" 엄마, 할머니 집은 몇 층이야?"
" 할머니 집은 33층이지. 왜? "
" 나도 그런 높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 아파트에 왜 살고 싶은데?"
" 그냥 창문 밖 경치도 잘 보이고, 더 좋은 것 같아서."
" 할머니 집 가면 엄마가 맨날 너한테 뛰지 마라, 뛰지 마라, 잔소리하잖아. 그건 괜찮아? 지금 집은 1층이라 마음대로 뛸 수 도 있고, 길냥이 친구들도 자주 만나잖아."
" 아 그렇네? 그럼 지금 집이 나으려나? 그래도 아파트에도 살아보고 싶어."
얘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8살이 된 아이는 자신이 사는 집과 남이 사는 집이 다름을 구분할 만큼 자랐다. 층간소음 핑계, 길냥이 핑계를 댔지만 정말 핑계에 불과하다. 하교 후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는 SNS 속 엄마들의 피드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 바로 넘겨버린다.
아파트에 살았던 적은 있다. 아이가 4살 무렵까지, 아파트에서 살았고 그 후 지금의 빌라 1층으로 이사를 왔다.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고, 소박한 정원이 있는 곳이라 아이 키우기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아파트에 살았던 기억은 핸드폰 속 사진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이사 간 후로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이제는 아파트에 언제 다시 살자라고 빈말도 못 할 것 같다. 솔직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아마 난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지금의 집에 끌려서 이사를 결정했을 때, 내 인생 부동산으로 돈 벌긴 힘들겠다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못 벌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난 아이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는 그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정말 내가 들어줄 수 없는 걸 요구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것을 부모의 판단하에 안 해주는 것과, 해 줄 수 없는 것을 못 해주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지 말아야지 하고 늘 생각한다. 어느 정도 그런 삶을 살게 된 것도 같았다. 그런데 솔직히 아이의 인생은 꽃길을 걷게 해주고 싶다. 넘어져도 덜 다치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푹신푹신한 그런 길. 니 인생은 니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야 라고 말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지극히 평범한 K-엄마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기분이다. 나는 분명 아이의 물음에 당황하고 소설 한편 뚝딱 만들어 내고 말았지만, 그래서 좀 더 자랐다.
역시 부모는 아이없이 자라지 않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