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스위치와 플레이스테이션5에 대하여
게임 쪽에서 흔히 콘솔 전쟁이라 하면 대부분의 경우는 16비트 시절 미국 시장에서의 닌텐도의 슈퍼닌텐도(슈퍼패미컴)와 세가의 제네시스(메가드라이브) 사이의 대결을 이야기한다. 이 당시 미국의 어린이들은 닌텐도파와 세가파, 마리오파와 소닉파로 갈리면서 격한 논쟁과 싸움을 이어가기도 했고, 자신이 못 가진 다른 콘솔을 가진 쪽을 시기하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각 게임 회사는 상대가 가지지 못한 게임 타이틀이나 스펙을 제 나름대로 뻥튀기하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퍼부으며 한 동안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파이팅 스피릿'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 경쟁이 한창 치열할 당시에 나도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이 시기가 나름 굉장히 인상적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정작 한국에 오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게임기보다는 PC 게임 위주로 즐기고 있는 걸 보고 약간 당황하기도 했던 것 같다("너네 세가 제네시스 몰라?" "그게 뭔데, 십덕아."). 이후 게임 역사에서는 세가가 뒤로 밀려나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치고 나오기도 하고 신흥 강자로서는 엑스박스가 떠오르면서 콘솔계의 게임기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치열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었던 것 같다.
현재는 PC 게임 시장을 아예 별개로 친다면, 콘솔 쪽에서 양대 강자는 닌텐도 스위치와 플레이스테이션5가 아닐까 생각한다. 양쪽 모두 품절 대란이 잦았고, 독점 타이틀이 나올 때마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그 인기만큼 다양한 양상의 논란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관련 행사가 있을 때면 인파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고, 시간이 많이 없는 성인 게이머라면 둘 중 어떤 콘솔을 골라야 하는지의 여부도 항상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 된다. 하지만 예전 슈퍼닌텐도와 제네시스 사이의 대결과 현재의 두 콘솔 사이의 비교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띤다. 이전의 콘솔 전쟁은 비슷한 스펙과 고객층을 가진 동일한 조건 내에서의 경쟁이었지만 현재의 닌텐도 스위치와 플레이스테이션은 두 게임기 자체의 성능과 지향점에서 아예 다른 측면이 많기에 정확한 비교가 힘든 상황이다. 마치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와 재패니메이션인 '아키라' 중 어떤 작품이 더 좋은 애니메이션인지, '나 홀로 집에'와 '다이하드' 중 어떤 영화가 더 위대한 크리스마스 무비인지를 논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예 대상으로 하는 팬층이 다르고 스펙과 제작 과정 및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기기를 비교하는 것보다는 어떤 쪽이 더 취향에 맞는지를 고려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처음 닌텐도 스위치를 접했을 때, 당시에는 게임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눈이 돌아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휴대용 게임기와 거치용 콘솔 양쪽이 모두 가능하게 만든 그 아이디어와 기술 자체만으로도 뭔가 어릴 때의 환상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서 게임을 하다가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냥 덱에 꽂혀있던 게임기만 쓱 꺼내서 가방에 넣으면 언제 어디서든 하던 그대로 계속할 수 있는 것, 어릴 때 조금이라도 게임을 즐겼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바라던 일 아니었을까. 게다가 게임 라인업 자체는 어떤가? 어릴 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마리오, 소닉, 젤다 등의 고전 캐릭터들에 현재의 기술과 치열한 고민을 쏟아내어 성공적으로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주는 '마리오 오디세이'나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같은 아름다운 게임들과 '동물의 숲'이나 '포켓몬스터' 같은 인기작품까지 알차게 꽉 차 있다. 게다가 약간의 금액만 정기적으로 내면 예전 슈퍼닌텐도와 세가 제네시스, 닌텐도64와 NES 시절의 게임 라인업까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이따금 '캐슬배니아'나 '메트로이드' 같은 시리즈도 신작 혹은 리마스터 모음집 같은 것들을 발매하며 어릴 적 취향이 남달랐던 친구들까지 챙겨주니 나처럼 80~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동심에 추억보정까지 더해서 눈앞에 그대로 구현해 주는 마법의 기기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닌텐도 스위치 역시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입맛이 까다로운 하드한 성인 게이머들에게는 어필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일단은 스펙이 아무래도 휴대용과 거치용 양쪽을 모두 챙기려 하다 보니 PC나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한 편이기에 그래픽도 상대적으로 투박하고, 여러모로 큰 규모의 게임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기를 지향하기 때문에 철저한 '성인용' 게임은 라인업에서 지양하는 편이기도 하다. 이는 사실 예전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청소년기에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게임들 대부분은 당시에도 플레이스테이션 쪽이었다. '사일런트 힐'이나 '바이오하자드' 같이 뭔가 영화를 뛰어넘는 공포와 스릴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게임들은 당시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해보고 싶고 궁금하지만 그 진입장벽이 높았기 때문에(비싼 게임기를 살 돈이나 공부는 제쳐두고 집에서 당당하게 게임에 오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으니) 플레이가 쉽지 않았다.
한창 닌텐도 스위치를 즐기면서 "플레이스테이션5에 왜 다들 그렇게 목매는 거야? 닌텐도 스위치로도 즐길 것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데?"라는 생각을 하던 무렵, 기대작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6가 스위치에는 발매될 예정이 없다는 점, 나름 하드하게 즐기던 '몬스터 헌터 라이즈'의 차기작은 플레이스테이션 전용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등을 원인으로 어느 순간부터 슬슬 플레이스테이션5의 구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있어서 게임의 가장 중요한 어필 요소는 '어릴 적 동심과 추억의 구현', '환상의 세계에서의 간접 체험'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다크 소울' 시리즈 같은 어려운 플레이를 강요하는 하드한 게임들이나 어두운 세계관과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쾌한 골짜기의 영역에 있을지도 모르는 화려한 그래픽을 강조하는 '어른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은 부담스러워서 구매가 꺼려지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부터 '갖고 싶다는 욕구'가 나의 이성을 앞질렀기에, 어느 날 와이프의 허락을 얻어내고 플레이스테이션5를 용산 아이파크몰에 직접 가서 사 오게 되었고, 게임기를 TV에 연결해서 켜게 된 그 순간부터 나에게는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스위치로는 절대 구현될 수 없는 그래픽이나 차원이 다른 컨트롤러의 센서가 주는 다양한 체험, 아예 다른 성향을 띠는 하드하고 헤비한 게임들이 주는 새로운 영역의 재미에 완전히 빠져버렸다("어? 나 사실 어두운 게임들 좋아했네?"). 결국 원래 즐기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신작과 기존에 하고는 싶었으나 손이 닿지 않았던 '몬스터 헌터 월드'로 시작해서 '디아블로 IV'까지 갔다가 그동안 꺼려왔던 소울류 게임까지 건드리는 등 나의 게임플레이 영역이 한순간 엄청나게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기에 호기심은 들었지만 발을 들이지는 않았던 영역, '그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재미란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인생에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면서 "스위치는 요즘 아예 건드리지도 않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반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플레이스테이션5를 처음 접한 몇 개월 동안은 정말로 스위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매운맛에 질리면 단 것도 먹어야 하듯이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과 '모르면 죽어야지' 류의 플레이에 질릴 때는 귀여운 캐릭터와 세계관을 즐길 수 있는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 같은 게임을 하며 힐링도 필요하다. 게다가 휴대할 수 있는 캐주얼한 게임플레이를 제공하는 닌텐도 스위치는 어디로 가져가려면 보부상이나 배낭여행객처럼 큰 짐을 짊어져야 하는 플레이스테이션5에 비해 어마어마한 이점을 지닌다. 결국 둘 중에 무언가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이 자신의 취향에 더 맞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게임이 어린 시절의 동심을 구현해 주고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게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은 주저 없이 스위치를 고르면 될 것이고, 청소년기에는 바라만 봤던 미지의 영역으로의 도전과 새로운 자유 및 체험을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플레이스테이션5를 구매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의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즘 같은 때는 정말 "거 게임하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생각이 드는 나날들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