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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칭 Jul 17. 2019

러시아 황제의 몰락을 그린 다큐 드라마, 마지막 차르


러시아판 최순실' 라스푸틴의 국정농단과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다룬 흥미로운 다큐 드라마. 러시아 현대사를 보고 싶은 엄근진 시청자, 황실과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호기심 시청자를 모두 만족시킨다. 


아나스타샤의 부활? 


드라마는 1925년 독일 베를린 정신병원에 누워있는 여인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이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의 넷째딸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주장한다. 7년 전 혁명파인 볼셰비키들에게 차르의 가족(황후와 1남4녀)이 모두 총살당했음에도. 


실제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 [사진 위키피디아 ]

다큐 드라마지만 도입부에 이런 미스터리 요소를 배치하면서 딱딱하지 않고 몰입감을 높인다. 병원을 찾은 황실의 가정교사 피에르 질리아의 눈을 통해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인지를 관찰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6편에서야 정체가 나오지만 이 여인은 가짜이면서 진짜다. 아나스타샤가 아니라는 점에선 가짜고, 진짜로 죽을 때까지 아나스타샤라 우겼던 애나 앤더슨[1]라는 실제 여인을 모델로 했다는 점에선 진짜다. 드라마를 위해 창작된 가공의 미스터리 요소가 아니라는 이야기. 


시대 변화에 준비안된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26살에 제위에 오른다. 독일 출신의 황후 알렉산드리아와의 결혼과 대관식이 연이어 급하게 추진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니콜라이 2세는 드라마에서 "나는 차르게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읊조린다. 비극의 종말을 예견한 것처럼. 


니콜라이 2세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황제가 됐지만 대관식부터 수천명의 시민이 죽으면서 '피의 니콜라이'로 불리게 됐다. [사진 넷플릭스]

그의 곁을 지켰던 숙부인 세르게이 대공은 비극을 더 부채질한 인물이다. 차르에게 전제주의만이 러시아를 다스리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세상에 바뀌고 있었지만 그의 사고는 중세에 머물렀다. 드라마에서도 이런 세르게이의 모습이 적절히 묘사된다. 


니콜라이 2세는 숙부 세르게이 대공의 영향으로 전제군주국가를 건설하려했다. [사진 넷플릭스 ]

세르게이는 대관식 준비 책임을 맡았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수천명이 깔려죽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대관식 후 연회를 취소해야 하지 않냐는 조카에게 세르게이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토닥(?)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위정자(爲政者)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대관식 참사로 '피의 니콜라이'라는 악명이 높아졌지만, 으레 천한 것들의 무력한 아우성쯤으로 여기는 뿌리깊은 선민주의는 더욱 공고해진다.  준비 안 된 차르와 시대착오적인 숙부, 비극의 씨앗은 처음부터 싹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판 최순실' 라스푸틴의 등장


출발부터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던 차르시대의 종말은 '러시아판 최순실'이랄 수 있는 라스푸틴의 등장으로 확고해진다. 이 다큐 드라마 속 교수와 전문가들도 차르가 라스푸틴을 가까이 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의 듣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한다. [사진 넷플릭스 ]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을 떠올리면 라스푸틴과의 유사성은 더 커진다. 나약한 리더를 사로잡는 무기는 샤머니즘이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정교회의 신부로 행세했지만 실제로 신학을 공부했는지는 불명확하다.


드라마에서는 시베리아 출신인 그가 마을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 '죄를 지어야 회개도 가능하다'는 이상한 교리를 전파하는 요승(妖僧)이 된 것으로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특히나 성(性)적인 부분에 집착을 보였고, 숱한 귀족 여성뿐 아니라 황후와도 염문설에 휩싸였다.[2]


라스푸틴의 실제 모습. 당대 귀족 여성들 사이에 힐러(healer)로 존재했지만 성적 쾌락을 좇았다는 소문이 컸다. [사진 위키피디아 ]

차르인 니콜라이와 황후 알렉산드리아는 4명의 공주를 낳은 후 어렵사리 황태자를 낳았는데, 유전병인 혈우병이 있었다.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이 병을 고치기 위해 황제 부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라스푸틴의 치료가 가장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차르가 전선으로 나가고 황후에게 통치를 맡기면서 라스푸틴은 비선실세로 군림하게 된다. 주요 내각의 임명권뿐 아니라 러시아를 떡주무르듯 마음대로 움직이는 권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의 전횡은 스스로의 죽음은 물론 혁명을 가속화시켰고,  차르시대의 종말을 불렀다. 드라마는 라스푸틴의 상승과 몰락 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묘사한다. 


드라마로 시작해 다큐로 끝맺음


다큐 드라마라는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전달하는 유용한 형식일 수 있다.  단, 아주 잘 만들어졌을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설픈 다큐 드라마는 두 마리 토끼를 좇다가 이도저도 아닌 최악의 결과물이 된다. 


<마지막 차르>는 어디에 해당할까. 초반 전개는 꽤 좋다.  나약한 차르와 요승 라스푸틴의 이야기에 집중하는데 드라마적 재미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탄탄한 고증이 잘 어우러진다. 대관식에서 차르가 목걸이를 떨어뜨려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는 디테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인 재미가 반감되는 아쉬움이 크다. 


차르 일가가 주인공이라지만, 궁궐 밖의 이야기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대목이 특히 아쉽다. 볼셰비키 혁명과 적백내전, 임시정부의 총리면서 차르를 연민했던 케렌스키의 실각 과정은 단조롭게 묘사되고, 전문가의 인터뷰 몇 마디가 덧붙여지는 것으로 갈음한다. 초반 기세와 힘을 끝까지 밀고 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와칭 방문해서 더 많은 리뷰보기 


제목   마지막 차르(The Last Czars)
출연   로버트 잭, 수잔나 허버트
시즌   1(2019)
등급   IMDb 7.1 에디터 쫌잼  


참고자료 


[1]애나 앤더슨의 생애

[2]각종 추문에 휩싸였던 라스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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