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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인 Aug 17. 2024

선우

긴 날숨으로

고엥까 선생님은 스스로 자신을 깔리야너 미따(kalyāṇa-mitta), 선우라고 부른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보디 싸뜨바(bodhi-sattva)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는 이생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 중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분이었다. 귀국하기 전 만나 뵙고 불만을 토로하고 신이 난 아이처럼 뒤돌아 나왔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흉을 보고 나면 괜히 말한 것은 아닌지 마음 어딘가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잘못한 것 같은데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선생님의 메따(자비와 연민의 힘)라는 신통력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명상코스 지도 중에 봉사자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면, 가끔 고엥까 선생님을 언제 만났는지,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를 궁금해한다. 처음 뵙게 되었을 때 이 분의 전생 중의 하나가 달마(dharma)대사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가며 한동안 이유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었다.

     

이갓뿌리의 담마기리에서 그 십일 코스를 참여하는 수백 명의 여자 수련생 중에 3명의 외국인 중에 한 사람이었던 나는, 코스 중에 고엥까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면담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십일 코스가 시작되면 십일 과정 중의 호흡을 관찰하는 아나빠나(anapana)와 몸의 감각을 지켜보는 위빳사나(vipassana), 자애의 마음을 방사하는 메따(metta) 세션을 직접 육성으로 가끔 지도하시기도 했다.

     

고엥까 선생님이 내게 물었던 것은 단지 “감각을 느끼는가?”였다. 그 질문은 영어가 서툴렀던 나에 대한 배려였던 것 같다. 예스라고 했을 뿐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는 한 동안 웃기만 했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어떤 질문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잠시 나의 웃음소리만이 내 귓가를 스쳐갔다. 기쁨에 젖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 것이 전부이다.  

   

가장 잊을 수 없는 만남은 지도법사 훈련 코스를 함께 해준 막내 여동생인 일라 데비 아가르왈(Ila devi Agarwal)의 메따 파워를 목격한 이후이다. 그녀가 십 일째 날 오전 메따 세션을 마치고 출입문을 향해 수련생 앞을 걸어 나갈 때이다. 고엥까 선생님처럼 손을 들어 올렸을 뿐인데, 여느 코스와는 다르게 일부의 수련생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았다. 가족들의 봉사하는 삶을 마주하며 고엥까 선생님의 사촌 형님이 지도하는 사띠빳타나(대념처경) 코스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번째 단계의 지도법사 훈련 과정을 마치고 선배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두 부부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빛이 가슴에 남아 있다. 2013년 가을, 고엥까 선생님은 어떤 제자도 후계를 잇는다는 유언 없이 돌아가신 것은, 붓다의 유훈인 ‘법등명자등명(自燈明法燈明),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라’는 것처럼, 스승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기신 것이 있다면, 봉사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명상을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각 나라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뛰어난 사람들 주변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신처럼 여기고 신봉하고 우상화하려 한다. 맹목적으로 따르고 숭배하면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현상이다. 또한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갈등을 부조화로 치부해 버리기 전에, 갈등 또한 성장을 위한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의 모순을 외면한다면 맹신이 될 것이다.

     

인도에서의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한국에서의 적응은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더 자주 목격해야 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외국에서 생활 한 기간만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외국으로 되돌아 간 사람들도 있다는 지인들의 말에,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를 되뇌게 하는 낯 설음이었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서 밀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 지났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현실자체를 받아들이고 내 맡기는 것일 테다. 그리고 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직면하는 것으로 응어리진 마음은 용해되어 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저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만큼 아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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