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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희 Sep 11. 2023

#7. 모든 것이 여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챕터 3. 도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7.  것이 여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여행과 같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땅을 기는 개미들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했다. 어떤 개미는 제 몸이 가려질 만큼 큰 이파리나 먹이를 들고 다니곤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풀 쪼가리에 다리가 달린 듯 보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나가는 개미들을 보지 않게 되었다. 우연히 눈이 닿아도 시선은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나이를 먹은 것일까, 시대가 변한 것일까? 언제나 새로움을 보여주던 세상은 어느덧 나에게 벽걸이 시계 대신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는 것처럼 익숙해졌다. 그 어린 날처럼 쪼그려 앉아 곤충을 관찰하던 호기심은 이제 사라졌다. 아니 정말로 사라진 것이 맞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제 무언가에 홀린 듯 몇 분간 조명에 달려드는 불나방을 지켜봤다. 불나방은 빛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기준으로 각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날다 보면 결국 나선을 그리다가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도 나는 그 날갯짓에서 어떠한 절박함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날갯짓을 멈추지 못해 가까워지는 불빛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을까? 벗어나기 위해 날개를 흔들었지만, 결국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는 현실에 좌절하지는 않았을까? 과거의 호기심은 어느덧 내 삶에 비춰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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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살 나의 세상은 집과 놀이터, 버스정류장과 등하굣길이 전부였다. 골목을 하나만 돌아도 모르는 세상이 펼쳐졌다. 버스에서 한 정거장 지나치면 또 다른 여행길이 되곤 했는데 어린 날에 나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열심히 눈을 굴리며 그 지역을 탐험하고 개척했다. 심각한 방향치인 나는 그렇게 종종 길을 잃고 다시 두근거리는 긴장감으로 여행을 반복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는 나의 지도를 넓혀갔다. 길을 잃으면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있으니, 발걸음에 거침이 없어졌다. 모르는 지역도 친구들과 함께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고, 지하철을 타고 지명이 바뀌는 세상으로 뛰어드는 것도 설렜다. 그 시절에 설렘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항해 중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 목적지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목적지를 모르는 여행을 내가 경험한 것은 소년이 어른에 가깝게 된 먼 훗날에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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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만날 사람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 갔다. 두어 번 가본 경험이 있지만 구체적인 지리를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친절히 내가 보고 있는 방향까지 알려주는 휴대전화 덕분에 무사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차 뒷좌석에는 항상 전국 팔도가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그때 휴대전화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던 “세상 참 좋아졌다.”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싶다.


  분명히 세상은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막연함으로 피어오르는 긴장과 불안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언제나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겸손을 표현하는 문장인 것을 알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싹을 틔우고 햇빛을 향해 하늘로 다가가던 벼도 시간이 지나 하늘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자라온 추억을 회상하며 자신의 어제를 회상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일까.


  경험이 많다고 설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익숙함은 설렘이라는 감정을 둔감하게 만든다. 어제에 살지 말고 오늘을 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러한 쓸모없어 보이는 생각들이 나를 오늘에 살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오늘에 나는 익숙함을 경계하고 있다. 과거를 단순히 지나간 일로 치부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오늘을 살기에 나는 내일도 내일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1996년 시월 마지막 날 태어난 나는 오늘을 살기를 다짐했다. 익숙함을 잊고 내 삶에 9,812번째 해가 저무는 것에 설렘을 가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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