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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희 Oct 09. 2023

시골 벽돌 이야기

"퍼석"


옆집에 살던 친구의 일부가 또 흘러내렸다. 이제 동네에 아는 얼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이는 날이면 하나둘 아는 얼굴이 사라졌다.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지금은 쭈글쭈글해진 마을 사람 중에 몇몇은 우리와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황량하던 곳에 그들이 집을 짓고 차곡차곡 담을 쌓으면서 나도 이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 그렇게 나는 마을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풍경으로 관찰되기도, 한 집을 지키는 담으로 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지칭하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저 나와 몸을 부둥켜안고 함께 세월을 보낸 이 친구들과 하나로 불렸다. 누군가는 '여기'라고 했고 누군가는 '담벼락'이라고 했다. 내 뒤에 집을 짓고 사는 팔순이 넘은 노인만이 '우리 집 앞'이라고 불렀다.


노인은 다 자라지 않았던 학생 시절, 이곳에 우리를 쌓아 올린 사람 중 하나이다. 그가 자라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낳고 마을 이장이 되고 서울로 자식을 보내고 아내와 이별하는 순간을 모두 보았다. 나와 친구들의 신체가 부서져 가는 것처럼 그도 점차 왜소해지고 있다. 그래도 그를 보며 살아서 즐거웠다. 그도 가끔 우리에게 손을 얹고 산책을 즐겼다.


그저 주변에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서로에게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우리 뒤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면 나는 무료함에 먼저 무너졌을 수도 있다. 이 또한 세월이고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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