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레카 권 Mar 08. 2022

누구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추억 하나쯤 있지

헤밍웨이의 <호주머니 속의 축제>을 읽고

 
누구에게나 호주머니 속에 쏙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 소중한 것이 있다.
헤밍웨이가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은 축제가 무엇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은유적인 이 책의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든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의 다른 출판사의 책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주머니 속의 축제>라는 은근한 의역이 좀 더 마음에 든다.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보낸 행운을 누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를 가더라도 그 추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간다네.
그건 파리라는 도시가 머릿속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축제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지.

-어니스트 헤밍웨이(1950)


수많은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값싼 음식과 술을 나누며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던 시절의 파리.
예술을 향한 고뇌와 진한 커피 향이 나고, 가난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향유하는 어린 연인들이 있던 파리.
아프도록 아름다운 짝사랑과 수많은 교차가 일어나던 그 시절의 파리.
내가 가보고 싶은 파리는 그 시절의 파리이기에 어쩌면 문학으로, 영화로, 상상으로만 가볼 수 있는 곳일지 모른다.

파리가 아니더라도 젊은 날의 눈부신 추억 하나 호주머니 속에 넣어 다닌다면
언제 어디서든 축제의 순간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자라나는 온갖 다른 생명들에게 모두 그렇겠지만 사람들에게도 분갈이가 필요하리라 나는 생각했다.

16페이지


스투키의 번식력은 놀랍다.
화분에 금이 갈 정도로 번식하는 스투키를 분갈이를 하면서 헤밍웨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늘어나는 나이만큼 나는 제대로 성장하고 있을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커지고 나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커져서 더 큰 그릇으로 분갈이를 해야 할 텐데
아집과 편협으로 오히려 더 작아지지는 않았나 되돌아본다.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하고, 가보고 싶은 시절의 파리를 품게한다




우리들은 함께 그곳으로 가서 책을 읽겠고
밤이면 포근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창문들을 열어 놓으면 별들이 밝게 빛나리라. 우리들이 갈 곳은 그곳이다.

18페이지


함께 책을 읽고, 쏟아지는 별들로 샤워를 할 수 있는 곳.

가끔 찾아오는 빗방울의 노크에 반갑게 뛰쳐나갈 수 있는 곳.

파도의 자장가에 살포시 잠들 수 있는 곳.

헤밍웨이가 헤밍웨이의 그곳을 향하듯 나도 나의 그곳을 향해 달려가리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참된 문장 하나를 쓰는 것뿐이야. 내가 아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하나 써야 해.

22페이지


참된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고뇌하던 헤밍웨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바로 어제의 일처럼, 나와 대화를 나눈 것처럼 그렇게...

쉬지 말고 고뇌하고, 사유하여 참된 문장 하나를 쓰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참된 문장 하나를 쓰자


나도 알아. 이제 우린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하고,
모든 순간을 한껏 누려야 해.

74페이지


순간순간에 열심을 다하고, 오롯이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충만한 삶은 없을 것이다.

이걸 하면서 저걸 걱정하고, 저걸 생각하면서 이걸 누리지 못하는 ‘멀티 플레이’를 살포시 내려놓으려 한다.

한 순간에 하나만 충실히 하기, 더없이 충만히 누리기.

2022년 한 해는 충실한 순간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나는 구석에 앉아 어깨너머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공책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가져온 커피가 식기를 기다려 반쯤 마신 다음 탁자에 좋고 나는 글을 썼다.

95페이지


카페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카페 좌석을 훑어본다.

이왕이면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곳, 가운데보다는 구석진 곳, 화장실이나 입구에서 조금 먼 곳.

그곳에서 공책이든 태블릿이든 꺼내 끼적이며 커피 한 모금으로 마음을 데우는 시간은 언제든 황홀하다.




추억과 상상으로 데워지는 시간


파리는 영원히 끝이 없으며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그들만의 추억을 간직한다.

254페이지


많은 추억을 쌓은 장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에게 바다가 그렇고, 가끔 찾아가는 모교가 그렇다.

주변은 바뀌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바뀌지만 추억이 묻힌 구석구석은 여전히 나를 반겨준다.

그때그때의 내 감정을 알아채고는 행복한 추억, 씁쓸한 추억을 번갈아 떠올리게 해 준다.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하다.
첫째, 젊은 시절 파리에서 교류했던 작가와 예술가들에 대한 헤밍웨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평판을 접할 수 있어서
둘째, ‘축제의 뒷이야기’를 통해 시대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 수 있어서
셋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내가 가고 싶은 시절의 파리를 만끽할 수 있어서 나에게 특별하다.
책장 제일 손이 가까이 닿는 곳에 꽂아두고 축제의 순간이 고플 때마다 펼쳐보려고 한다.

중간중간 <축제의 뒷이야기> 코너로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이 책이 내게 특별하다


이 책과 함께 보면 더욱 전율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