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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레카 권 Nov 26. 2021

우리의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다.

- 이희영의 <페인트>를 읽고


페인트...

벽이나 담장을 색칠하는 '페인트(paint)'를 소재로 한 책일까?

경기나 놀이에서 상대를 속이는 '페인트(feint)'일까?

두 사람을 빼꼼히 내다보는 아이의 조심스럽게 큰 눈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다.







부모가 낳은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을 때 정부에서 그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NC 센터가 세워졌고, 우리는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ren)이라고 불렸다.
p.22


완벽하게 모두를 만족하는 정책은 있을 리 없겠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NC 센터 정책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태어난 생명이 죄책감과 피해의식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것...

실현 가능성과 발생 우려가 있는 문제점은 접어두고 발상만 두고 보았을 때 참신하고 이상적이라 생각된다.




"너희는 바깥세상 아이들과 달리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
p.24


"우린 버려졌다는 뜻이죠"라고 말하는 제누 301에게 가디 최가 해준 말이다.

관점이 바뀌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세상을 대하는 자세도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양육자에게 일방적으로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를 주도적으로 택할 수 있는 아이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분별력이 있는 나이 이상이 되어야 하기에 열세 살 때부터 매칭이 이루어진다는 NC센터 설정에 나도 모르게 설득되었다.




각기 다른 색이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부모 면접이었다.
색이 섞여 전보다 밝게 빛날 수도 있고, 탁하게 변할 수도 있었다.
p.38


우리의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를 통해 내 삶이 밝아지기고 하고, 탁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삶을 밝힐 수도, 탁하게 할 수도 있다.

발색은 결코 일방적일 수 없고 서로 물들이는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이왕이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밝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p.117


'나'는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한 가지 특징으로 단정할 수 없다.

'나'는 반복되는 생각, 습관, 경험들이 쌓여가며 타고난 기질과 마찰하고, 조율하면서 나의 성격과 성향, 인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의도대로 '나'를 만들 수 없는 건 그러한 마찰과 조율의 황금비율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스러울 필요 있나요.
p.122


여전히 제일 자신 없는 종목이 '어른스러움'이다. 생물학적 숫자는 이미 '어른'에 들어선 지 꽤 지났는데 아직도 철없고, 단순하고, 감정표현이 정돈되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문장이다.

이런 어른도 있을 수 있다니까!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p. 125 제누 301의 말


나의 아이도 자라면서 부모가 슈퍼맨, 원더우먼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많이 알아가겠지.

엄마 아빠의 '딸'이기만 했던 내가 '아내'가 되고,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모든 이름표가 처음이다. 부족한 대로 경험하며 살아내야 하는 새로운 미션...

새로운 역할들에서 약점에 서로 관대할 수 있다면 미션을 수행하는데 큰 에너지가 될 것 같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p.188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고 도전했다가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뒤돌아보지 않고 멈춰버릴 때가 많다.

이제 멈추려 하기 전에 이 문장이 떠오를 것 같다.

쉽게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끈기 있게 해 보는 것, 나는 지금 그 재능이 필요하다.




박의 말처럼 어떤 시대든 차별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 차별과 억압을 조금씩 부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발전이기도 하다.
p.217


우리가 상처 입는 가장 큰 이유가 어쩌면 '차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남과 비교해서 느끼는 '차이'가 기운 빠지게 한다면,

세상이 나와 다른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는 '차별'은 분노하게 한다.

'차이'는 비교 안 하면 사라지지만, '차별'은 내 의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차별'과 '억압'을 조금씩 부숴 가기 위해 발언하고, 제안하고, 개선해가야 한다.

혼자 삼키지 말고...





누군가 내게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를 들고 싶다.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하면 돼.
괜찮아, 잘될 거야.

p.223 <작가의 말>에서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하면 돼. 괜찮아, 잘될 거야." 하고 건네는 작가의 위로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소중한 내 아이와 함께 읽고, 생각 나누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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