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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레카 권 Mar 13. 2022

올곧은 여행자는 잠시 길을 잃고 헤매도 괜찮아

- 채사장 <소마>를 읽고

많은 이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도록 이끌었던 채사장의 첫 장편소설...

벼랑 끝에서 수많은 질문과 사연을 품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표지가 책에 대한 호기심을 한층 더 불러일으킨다.




벼랑 끝에서 수많은 질문과 사연을 품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표지



대립하는 모든 것이 이 아이의 삶 안에서 모순 없이 뒤섞일 것이라며, 물과 같고 바람과 같고 허공과도 같다는 의미에서 아이의 이름을 소마라고 부르라 말씀하셨다.

15페이지

어쩌면 '이름'이라는 것은 인생이라는 여정의 출발선에 설 때 입는, 지어주고 불러주는 이들의 사랑과 축복으로 견고히 짜인 갑옷 일지 모른다.

인생의 여정에서 거친 비바람을 만났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의 수렁에 빠졌을 때,
누군가 따뜻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내 이름을 들으면 견디고 이겨낼 용기가 솟아난다.




시간은 허상과 같아 영원은 순간으로 수렴하고,
순간 안에 영원이 농축되었다.

52페이지

시간은 결코 시곗바늘 끝이 가리키는 숫자에 갇혀있지 않다. 각자에게, 각 상황과 감정에 따라 시간은 순간이 되기도 하고 영원이 되기도 한다.

황홀한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되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하기에 우리가 삶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 고통을 끝낼 수 있다니.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사무엘은 자기 마음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희열을 느꼈다.

140페이지 고네의 말을 듣고

세상은 그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너무 작아서 티도 나지 않는 존재인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고네의 말이 사무엘(소마)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처럼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내 생각을 바꾸면 내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른다고...




세상이란 어쩌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고, 현실이란 생각보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304페이지

크레도니아 제1시민으로서 지배와 피지배를 없애고 평화를 이루었다 생각한 소마가 꿈꾸던 이상적인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억압받는 자들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자는 여전히 차별받고, 가난한 자들은 여전히 가난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정의롭고 평등하게 바꾸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끄떡없는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을지라도..




수많은 인상을 봅니다. 귀로 듣는 것을 보고, 코로 들이마신 것을 보고, 혀에 닿는 것을 보고, 피부를 스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닙니다.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입니다.

336페이지 맹인 이오페의 말

가끔은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가시광선으로 구별하여 볼 수 있는 것들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니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더 많은 면을 볼 수 있을 때가 있다.




아무리 들이붓고 들이부어도 채워지지 않던 자신의 텅 빈 마음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오페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쉽게 채워졌고 충만해졌으며 흘러넘쳤다.

343페이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헛되고 헛되다" 했던 솔로몬의 고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나의 필요를 채울 때보다 사랑하는 소중한 이들의 필요를 채울 때, 그들이 기뻐할 때 내가 채워지고 충만해진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어진 존재이기에...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누구나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되지...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너를 어른으로 만든다.

379페이지

소설의 도입부에서 소마에게 화살을 찾아오면 어른으로 인정하겠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소설의 결말에 다시 언급된다.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른으로 만든다는 문장을 덧붙이면서...




올곧은 여행자는 잠시 길을 잃고 헤매도 괜찮아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본다.

소마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연대기를 읽으며 함께 환호하고, 함께 울며 달려오다 보니 다시 벼랑 끝 바다 가 보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묵묵히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처럼 세상은 이어진다. 소마의 희로애락이 어떠하든...


나는 올곧은 여행자다. 내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를 몇 번이나 더 반복할지라도 나의 화살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 충실하리라 다짐해본다.




언제나 알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인문학을 쓰며 나는 인간을 알게 되었고,
소마의 인생을 따라가며 나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384페이지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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