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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Sep 13. 2020

꽃은 우리를 잊은 적 없다

지현아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힘겹게 감겨있던 눈을 떴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으나, 누군가 있을리 없었다. 나는 혼자살고 있으니까.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어딘가가 허전했다. 그렇게 바라던 자취 생활인데, 아직은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나 보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멍을 때리다, 온몸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어제 알바할 때 손님이 많았던 탓일까?아니면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했던 술 때문에?이유가 뭘까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의심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이내 그만두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물을 한잔 마시려는데, 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엄마였다. 그 순간 갑자기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건 잔소리다. 이건 보나마나 잔소리일 것이다. 전화를 받지 말까도 잠시 고민 했지만, 그러다간 더 큰 잔소리를 불러올게 뻔하니 결국 전화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여보세요?”


“너는 어쩜 애가 전화 한통이 없니?” 


역시 정답이다. 항상 같은 시나리오. 이제 곧 다른 집 딸과의 비교가 시작될 것이다. 


“민희 엄마네 딸은 그렇게 전화도 잘 하더라. 애교도 많고. 너는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전화 한통이 없어?”


 애교에 대한 부분은 나도 꽤 동의하는 부분이기에, 자연스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좀 애교가 많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살랑살랑 어깨 좀 흔들며 귀염떠는 딸이면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엄마의 자식사업은 대실패다. 하지만 그거는 그거고, 내가 바쁘지 않다는 대엔 동의하지 못하겠다. 대학생은 생각보다 바쁘거든. 


 시험기간이면 밀려오는 과제, 취업을 대비한 대외활동,어학점수를 위한 공부까지. “대학가서 놀아.” 이 말은 누가 시작했단 말인가?지나친 환상은 꿈에 찬 고등학생에겐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의 상실감도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테니. 딴 생각을 하며 괜한 머리카락이나 빙빙 돌리고 있자니, 제 힘에 부쳤는지 엄마의 잔소리가 슬슬 끝나려는 듯 보였다.


“듣고있지?” 하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응응, 다 들었어.” 하며 이제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분명 아까까지는 좀 외로운듯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잔소리로 시작된 아침에, 머리가 지끈거려 옷을 대충 입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나오는 아침산책에, 주위가 바로 보였다.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 뭐가 그리 바쁜지 뛰어가는 사람, 항상 역 근처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도. 하루쯤 안 나오실 만도 한데, 할머니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매일 다른 꽃을 파셨다.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전환이 하고 싶어 꽃 한송이를 집어들었다. 오늘의 꽃은 노란 장미꽃.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보고 있자니, 괜히 아까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엄마한테 전화를 안한지 꽤 오래되긴 했지?’


생각해보니 친구나 남자친구한텐 아무리 바빠도 쓸대없는 전화를 몇시간씩 하면서,엄마한텐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통을 안했으니, 나도 참 불효자식이지 싶었다. 아, 그러고보니 집에 빨래가 밀렸었지. 여튼 난 빨래 생각에 서둘러 집에 돌아와 대충 아무 병에다 꽃을 집어 넣었다.  



지잉, 지이이잉. 

그렇게 오랜시간 후, 한참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올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또 엄마에게 몇주 동안이나 전화를 하지 않았단 것이 떠올랐다. 엄마도 이쯤이면 포기할 만도 한데. 전화가 엄마라는 것은 확인하지 않았으나, 왠지 드는 확신에 그냥 다시 잠을 청했다.


‘지현아.’

또 들려오는 소리. 그 때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보다 주름이 많이 없는 모습. 이건 꿈이다. 나와 엄마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엄마는 지현이랑 영원히 꼭 붙어 살고싶어.” 낯간지러운 소리. 그 말에 나는 나도, 하고 대답했다. 

“엄마는 항상, 지현이를 생각해. 알지?” 


지잉, 지이이잉 

그 순간, 다시 울리는 전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축축한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천장은 울렁울렁거리고 있었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방은 색을 잃어 아무런 향기가 나오질 않았다. ‘지현아.’하는 소리와 동시에 콧속을 들어오던 섬유유연제 냄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따듯한 밥냄새. 항상 같은 곳에 마법처럼 있어 미처 의심해 보지 않았다. 이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전화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어 책상을 보니, 나의 무관심에 시들해진 누런 장미꽃과 눈이 마주쳤다. 미안한 마음이 턱끝까지 올라왔다. 


“응, 엄마.”

나는 전화를 받으며, 그제야 꿈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

밖을 보니, 또 소리없이 봄이 와있다. 어김없이 우릴 찾아온 꽃들을 보며, 또 이루지 못할 결심을 한다. 이젠 잊지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하겠노라고.  

꽃은 우리를 잊은 적이 없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우리를 바라보며, 항상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땅을 보고 나서야, 꽃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꽃이 지고난 후에야 꽃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늘, 

꽃을 잊은 것은 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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