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방법은 쉽다. 그 사람과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사람을 안다고 확신했을 때.
우리는 쉽게 선을 넘어버린다.
나는 가끔 대화가 길어지다 보면 어느새 나의 깊은 곳이 있는 얘기까지 이야기할 때가 있다. 상대방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그 흐름을 따라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그랬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주제들이 나왔고 나는 어느새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아픔을 내뱉었다. 너무 한순간이었다. 말을 하면서 '그만해야 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휩쓸려 저 멀리 떠내려간 말을 다시 구할 수는 없었다.
'망했다. 또 상처받을 거야.'
횡설수설 얼버무리며 내 문장은 끝이 났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따뜻한 위로가 닿았고, 안도했다. 상처받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기분 좋게 그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그 사람과 더 친밀감이 생기기도 했다. 서로의 깊은 곳까지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 좁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는 늘 갑작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사람은 그 사람만 알고 있던 나의 얘기를 내뱉었고 나의 아픔은 벌거숭이가 되어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열이 오르고 깊은 숨이 들이쉬어지고 갑갑하고 벗어던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전부 벗겨진 상태였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꼭꼭 숨긴 채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웃었다.
웃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왜 타인의 아픔을 쉽게 내뱉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나도 뱉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아픔을 벗겨 내던지고 싶었다.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말들이 넘치기 전에 나는 삼켜버렸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안에서는 아직 말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넘칠 준비를 하고 있지만 계속 숨을 들이쉬며 그 말들을 식혔다.
잘 했다고 생각했다.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뱉은 말들은 가끔 이렇게 누군가의 돌발적 선넘기로 인해 되돌아와 상처를 남기고 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 아픔이 나의 말로 인해 벗겨져 주저앉아 울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모르는 새 빠져나간 말들로 상처받고 상처 주고, 많고 많은 말들 중 하나일 테지만 그 떨어진 말 하나로 인해 퍼진 진동의 파장은 너무 크다. 어쩌면 여전히 진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넘을 수 있는 선, 1개이지만 그 선을 넘기 위해 1초의 시간을 갖는다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선을 조금 더 잘 넘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말을 후, 쉬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