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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Aug 26. 2019

지난것들의 아름다움

17. 요즘도 이발소를 다녀?

살다 보면 받은 것 없이 호감이 가고 평범한 말 한마디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상대가 있다.


내게는 20여 년 동안이나 계속 다니고 있는 단골 이발소가 있었다. 60 중반의 주인아저씨가 이웃집 형님 같기도 하거니와 조금 외진 곳의 이발소들이 대부분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어서 좋았다.

요즘은 남자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게 대부분이지만 왠지 미장원에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쑥스러움이 앞선다. 또한, 20여 년을 다니던 이발소 아저씨를 배신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도 않다.


언제부터인가 그분은 먼저 온 손님이 있으면 커피를 내어주고, 아니면 머리를 깎고 나서 커피를 같이 하기도 한다.

또 언젠가 토요일은 점심을 걸렀는데 혼자 먹기도 그러니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여 국밥 한 그릇을 대접받은 적이 있어 늘 부담이 되곤 하였다. 그래서 어느 토요일 오후에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하기도 했는데, 한 사람 머리 깎아 주면 9천 원을 받는데 국밥 사주고 나면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싶어서이다.


이발소에 들어서면 항상 웃는 그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벗어진 이마에 그려진 깊지 않은 주름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입가의 주름이 너그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냥 보기만 해도 편한 얼굴 이고 그 분이 살아온 성정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호감이 간다.


의자 앞 거울 위에는 오래전부터 받은 무슨무슨 상장들과 사회봉사단체 위촉장, 면허증 등 색은 바랬지만 낡은 액자들이 그분의 사회활동을 대변한다.

선반 위에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이발도구, 작은 어항, 면도 거품을 닦아 낼 적당한 크기로 오려놓은 신문지 조각들이 늘 같은 자리에 그분의 모습처럼 깔끔하게 놓여 있다.


선반 한쪽에는 언제인가부터 모아둔 청첩장들이 색이 누렇게 바랜 것부터 최근 것 까지 높다랗게 쌓여 있어 부조금 역사도 한눈에 보인다.


이발소 구석의 낡은 소파 앞에는 나지막한 테이블이 있는데, 일요일이면 출근하여 소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퇴직한 몇몇의 이웃 분들이 이곳에서 몇 백 원짜리 내기 화투를 하다 짜장면이나 칼국수를 시켜먹고, 커피까지 한 잔 하고서야 헤어지는 것이다.


어두침침한 다방에 앉아 실없이 다방 아가씨 손이나 조몰락대며 비싼 커피 인심 쓰듯 사주고 나서 속 쓰리다고 푸념하는 것보다 한두 시간 이웃과 함께 떠들며 식사와 차를 같이 한다는 것은 무료한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일과 중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일 게다.


그분은 내가 의자에 앉고 나면 직장 일은 어떠냐고 근황을 묻는다. 직업의식의 발동 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순수한 안부인 것 같아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하여 이곳에서 여러 층의 사람 사는 모습들을 알게도 된다.


가령 누구가 다방 아가씨와 눈이 맞아 달아나 동거하다 1년 만에 재산 탕진하고 집에를 왔는데 조강지처가 어찌어찌하더라는 얘기와 뉴스에 보도된 무슨 사건이 사실은 그게 아니고 어떻고 하며, 그야말로 기사화되지 않은 생생한 사건과 실화들이 넘쳐난다.

진의야 어찌 되었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에서는 들을 수 있는 재미난 얘기들은 또 다른 라디오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내 머릿결은 반고수머리라 가위질하기가 좀 어렵다고 한다. 머리숱이 많아 좋겠다며 참 좋은 머릿결이라고 부러움을 사곤 했는데, 요즘은 이마 위로부터 벗겨져 올라가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이야기를 하면, 아직 염려할 것 없다며 나이가 들면 조금씩 벗겨지면서 중년의 멋이 살아난다나? 듣고 보니 또한 기분 거스르는 소리는 아니다.


머리를 깎고 난 후,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우면 턱과 얼굴을 지나는 면도칼의 지나감이 서늘히 느껴지며,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서비스를 받는 기분이어서 참 좋다.


어릴 적 면도날이 무서워 이발소 한번 가려면 뺨 대기 몇 대를 맞고도, 이발소 앞에서 몇 번을 기웃거리다 들어가곤 했다. 귀밑과 목에 면도날이 닿을 때면 오금이 저려오고 온몸에 닭살이 돋움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그 어설프고 조마조마한 느낌이 아니라 그야말로 최고의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스르르 눈을 감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싹싹거리는 소리와 푸른 면도자국 있는 매끈한 얼굴을 상상하는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한 맛이다.

이런 서비스를 받고 생각해 보면 생활 속에서 지출하는 돈 중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단골 이발소에서의 서비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발소를 찾는다.

아직 그곳에는 연륜을 가진분들의  인생드라마를 들을 수 있으므로. . .


살면서 늘 단골로써의 대접을 받는 곳이 어디 이발소에서 뿐이겠는가.

노점상 아주머니, 과일가게 아주머니, 동네빵집, 자주 가는 골목식당 등에서 우리는 늘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생존의 방식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보면 최상의 서비스를 베푸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입가의 웃음은 잊히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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