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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삼 Oct 09. 2019

지난 것들의 아름다움

19. 타작마당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자연재해 앞에서도 인간들은 잘도 버틴다. 올가을 태풍은 왜 이리도 야속하게 많은지. 어려웠던 시간들을 딛고 가을 추수는 진행 중이다. 

요즘의 수확은 많은 부분 기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수확 철에 타작마당을 구경할 수가 없다. 모두 들녘에서 수확하여 바로 창고로 이동하니 말이다.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듯 타작마당의 연기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골골이 인사를 다닌다. 황덕 불가의 사내들은 목에 둘렀던 수건을 펴 불길이 닿도록 휘휘 두르고 윗옷을 벗어  불 김을 쐬곤 했다. 어릴 적 보았던 보리타작마당 끝의 정경이다.


보리타작은 걸음벵이 (삼발이처럼 생긴 나무) 위의 챗상(알곡을 털기 위해 걸음벵이에 비스듬히 올려놓는 넓적한 돌)에 보릿단을 메어치며 알곡을 떨어내는 작업이다. 두 장정이 번갈아 가며 보릿단을 메어꽂을 때마다 알곡들이 우르르 떨어져 챗상 주위로 쌓인다. 알갱이 알갱이마다 통통한 꿈이 들어있다. 늦가을 다시 흙으로 돌아가 하얀 눈 위를 푸르게 솔잎처럼 지키다가 서릿발·눈발을 견뎌내고 종다리의 보금자리도 되어주다 때로는 연인들의 깊은 포옹을 훔쳐보다가 하는 꿈을 꾸며 다투어 떨어진다.


네이버 이미지 / 근현대 회화 100선에서


마당 한쪽에선 아낙들이 미처 떨어지지 않은 꼬투리를 훑고, 남정네들은 또 한쪽에서 도리깨질로 남은 알곡들을 떨어낸다. 

도리깨는 도리깨 장치라는 팔뚝 굵기의 통나무를 어른 키보다 크게 잘라 그 끝에 구멍을 내고 그곳에 도리깨 노리(가느다란 물푸레나무 세 가지를 엮어 만든 탈곡에 쓰는 농기구)를 꼭지에 끼워 사용하는 농기구이다. 

도리깨질을 하는 장정들의 팔뚝에서 불끈불끈 근육이 실룩거리는 것을 보면 야성미가 느껴진다. 종마의 뜀박질 근육을 보는 느낌이다. 

도리깨 노리가 위로 까맣게 치솟았다 힘차게 내리 꽂힌다. 

"쉿! 쉿!"  

발정한 동물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 같다. 지켜보는 사람의 몸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장정이 휘둘러대는 야무진 그것이 봉긋한 검불 더미를 사정없이 파고든다.

 "퍽! 퍽!" 

도리깨질이 절정에 이르면 검불 더미는 마당가에 널브러지고 여름날의 타작마당은 땀으로 끈적인다. 


타작마당의 끝은 경건하다. 겨 더미에 불을 놓으며 의식이 시작된다. 불 앞에서의 의식을 위해 주인은 남은 막걸리와 안주를 챙겨 일일이 잔을 권한다. 그 날 남은 것은 바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타작을 끝낸 후련함을 보는 듯하다. 

장정들은 목에 걸린 수건과 윗옷을 벗어, 불김을 쐬며 옷에 붙은 까끄라기를 태운다. 그 동작이 너무 빠르면 까끄라기가 타지를 않고, 너무 늦으면 옷에 불이 붙으니 치성드리듯 불 김을 쐬어야 한다. 불 앞에서 윗도리를 훌렁 벗은 장정들의 검붉은 피부와 불끈 솟은 근육 위로 뻗은 핏줄이 선명하다. 듬직한 농촌의 모습이다. 


타작마당. 지나던 구경꾼에게도 수저를 쥐어주던 넉넉함이 있던 인간미 넘치는 정경들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본다. 


땀 흘리며 일을 마친 순간마다 함께 한 사람들과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즐기고 싶다. 타작마당의 뒤풀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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