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약 Aug 12. 2024

갈라진 길 끝에서 다시 만난 깐부

사업을 시작합니다

나는 생각보다 친구가 없다. 

내 결혼식 때 이렇게 친구가 많은 신부는 역대급이라며 촬영 감독님이 기념으로 항공샷을 찍어주실 정도였던 나지만, 사실 진짜 내 속 마음을 나누는 사람은 지구에 딱 한 명이다. 

생각해 보면 한 명이라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사실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다. 20년 전 역삼동의 아주 작은 회사에서 연봉 1600만 원 받으며 입사한 신입사원과 불과 몇 달 전 먼저 입사한 나보다 한 살 많은 예쁜 대리님으로 우리는 처음 만났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 회사는 전 직원수 12명의 아주 작은 광고회사였고, 몇 달 후 월 매출 10억 원을 처음 찍었다며 제주도 워크숍을 가는 꽁냥꽁냥한 분위기의 회사였다. 사장님도 젊었고 우리도 어렸다. 겁 없이 달려나가다 보니 이제는 어느덧 시가 총액 수천억 원의 중견 기업이 되었다. 회사가 로켓 성장을 하기까지 우리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우리가 생각해도 불도저처럼 닥치는 대로 사업을 벌였고 어떻게든 수습해 갔다. 우리는 회사의 중요한 두 축이 되어 회사를 성장시켜 갔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회사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업계의 입지도 단단해지고, 새로운 멤버들로 교체되면서 회사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워킹맘의 고충이라는 개인적인 사정도 컸지만 너무나도 변해버린 회사에서 난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고 결국 15년 간 영혼을 갈아 넣었던 그곳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빠져나왔다. 나와 15년 간 함께 했던 그녀는 그곳에 좀 더 머무르기로 했고, 그렇게 우리는 5년 전 서로 다른 선택을 한 후 갈림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졌다. 연휴나 명절이면 꼭 만나 같이 있었다. 아이들도 나이가 같아 잘 놀았고 우리는 만나면 원시적인 모습으로 먹고 마시며 마음을 충전했다. 5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점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달라진 인생의 길 위에서 나는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고, 그녀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엄청난 커리어와 인맥을 만들어 갔다.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마음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녀가 늘 걱정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 퇴사하기로 했어"

"결국 그날이 왔군요. 언제 하실 거예요?"

"응 두 달 후."

"헉 그렇게 빨리요? 어쨌든 잘 생각하셨어요~ 이제 좀 쉬면서 같이 뭐 할지 천천히 생각해 봐요.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뭐라도 하지 않겠어요?"

"그래~ 우리 뭐든 해보자~ 한 명씩은 어딘가 모자라지만, 서로 기대면 설 수 있어!"


그렇게 갈라진 길 끝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긴 세월이 우리를 더 깊고 진지하게 만들었고 이제 우리는 옛날보다 강하다.


마흔이 넘어 다시 세상에 툭 던져진 느낌이지만, 손을 꼭 잡고 씩씩하게 다시 걸어 나가기로 했다. 

5년의 경력 단절, 

엄마의 사춘기를 끝내고 사업을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