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7 Day16. 까리온 - 모라티노스 29.9km
오늘 걷는 구간은 시작부터 17km 동안 마을도 바도 아무것도 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어제 미리 사놓았던 시리얼과 요거트, 과일까지! 아침으로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였다.
17km라는 긴 거리 동안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진통제 효과도 좋아 물집의 통증도 거의 없었고, 길도 우리나라의 둘레길처럼 평탄한 길이라 긴 거리지만 빠르고 쉽게 걸을 수 있었다. 또한 마을이나 바만 없을 뿐,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벤치들이 많이 있어서 힘들 때에는 편하게 쉬며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17km가 되는 거리를 빠르게 걸어, 대략 11시쯤 두 번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이 정도면 목적지까지 가뿐하겠는데?'라고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던 것도 잠시, 점점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발바닥 물집의 통증 때문에 아파서 힘들어하고는 했는데, 물집의 통증을 줄이고자 발에 힘을 주고 걸었더니 최근에는 등산화가 부딪히는 발목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심지어 이제부터 진통제 효과가 떨어질 시간... 다음 마을까지도 거리가 꽤 있던 상황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이 마을에서 쉬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앉아서 쉬다 보니 그 정도로 발목의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야기하자 일행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함께 걷고 싶었고, 만약 이 곳에서 혼자 쉬게 되더라도 계속 이 길을 걸을 거라면 통증의 원인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테니까! 모두 나를 위한 걱정들이었다... 그런데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괜히 일행들의 시간을 뺏고 있는 기분, 피해를 주는 기분. 결국 나는 그 미안함과 부담스러움에 "이제 괜찮은 것 같다!" 하며 내 몸을 무시한 채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정말 걷는 내내 나의 발이 아닌 기분이었다. 너무 아파서 발을 끌고 걷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걱정하는 일행들은 점점 더 늦어지고 나는 그것이 미안해 걱정 말라며, 먼저 가라며 무리하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다.
평소에도 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고 배려하던 나. 내가 힘든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늘 '괜찮은' 내가 되었고 그런 모습이 싫으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지치고 힘들어서 조금은 나를 바꿔보고자, 아무도 나에 대해서 모르는 이 곳에 와서 스스로 고난을 주며 내 목소리를 잘 들어주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며 왔던 곳이었는데. 이 길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또 혼자 후회하며 이러고 있다니...
고작 30일, 700km를 걷는다고 내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우습고 바보 같았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목적지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에는 알베르게가 두 개 있었는데, 늦게 도착한 시간이 아님에도 모든 침대가 full이었고,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발을 끌고 걷던 나는 더더욱.
방법이 없던 우리는 다음 마을에 전화를 해 침대를 예약하고, 결국 발을 끌고 3km를 더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일행들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힘들었던지라, 우리는 까미노 길이 아닌 구글 지도 앱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걷는 시간을 줄이고자...
그렇게 도착한 모라티노스의 알베르게는 참 아기자기했고 우리가 전세 낸 것 마냥 정말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알베르게에서 준 저녁식사도 아주 맛있었고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아주 친절하셨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힘들었던... 그런 하루였다.
계획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30km라는 거리를 걷게 된 상황이, 그리고 늘 후회하고 바꾸고 싶던 나의 모습을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마주치게 되어 실망한 나의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