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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 Jan 16. 2024

세상을 향한 하현상의 답장

MUSIC :: 음악에서 내가 배운 것

2024 하현상 콘서트 <With All My Heart>

2024. 1. 14.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2024년은 큰 추위의 절기에 어울리는 하현상의 목소리로 시작했다. 공연이 1시간 30분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셋리스트의 열여섯, 열일곱 번째 곡인 ‘집에 가는 길’, ‘밤 산책’이 펼쳐지는 가운데 하현상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렸다. 그의 음악은 세상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의 답장이구나. 음악과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다양한 삶의 주제를 접한다는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착실하게 소감을 남기고 있구나. 말간 빛을 띠면서도 단단한 속내가 분명한 그는 거울 같은 사람이구나.


“음악이나 콘서트를 통해서 어떤 걸 전해줄 수 있을까, 전해줘야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저는 계속 같은 말을 다른 주제로 하는 중이에요.” 내가 자주 하는 말과 똑 닮아서 놀랍고 반가웠다. 무언가를 짓고 익히고 나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세라 믿기에, 그의 고백은 마음의 대지에 곧장 내려앉았다. 눈꽃처럼. 하현상에게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공연장을 나서며, 앞으로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노라 약속했다.







나를 위로한 메시지 : S#16. 집에 가는 길
“이겨낼게 나 / 견뎌볼게 나 / 살아볼게”


서가에 꽂힌 책이 떠오르는 형태의 LED 위로 늦저녁 노란 불빛의 열차가 길게 지나간다. 파란 배경 조명 사이에 선 하현상의 얼굴에는 붉은 조명이 물들어 있다. 주위로 보랏빛이 덧입혀졌다가 사라진다. 도심의 네온사인 위를 부유하듯 노래와 연주가 이어진다. “나 살아볼게 / 그늘진 마음 해가 비치게 견딜게 /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하늘이 있으니 / 거짓말들 같은 기적이 올 테니”


지난해 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인 하현상 정규 1집 <Time and Trace>. 너무 이르게 세상을 떠난 친구의 소식으로 혼란한 나날을 통과하는 내내 나는 그저 걸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퇴근 후에 한강 대교를, 낯선 동네를 마냥 걸었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버거워 서성이던 때,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은 오롯이 하현상이었다. 그의 입을 빌어 친구에게 다짐을 전했다. 살아보겠다고.


@Unsplash, Harry Gillen / Max Kleinen






그가 전하는 메시지 : S#18. Dawn
“Get me out of here / Get me out of you”


투명한 아크릴 프레임에 놓인 건반이 푸르스름한 은빛 조명 아래에서 빛난다. 성당의 열린 문틈으로 쏟아지는 빛처럼 하현상의 이야기가 고요히 쏟아진다. 나를 여기서 꺼내줘요, 간신한 한마디 후 찾아든 정적을 청록의 빛이 뒤덮는다. 부채꼴로 온 공간을 드리운 레이저 조명은 생명의 기운 같다. 침묵 끝에 다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때에 하얀 광명과 함께 대자연의 영상이 배경을 차지한다. 이 마음은 태초의 것, 자연한 것이며 이 메시지는 그의 정체성임을 자연히 깨닫는다.


‘1집은 어쩔 수 없는 추억의 공간’. 가수의 1집을 두고 누군가 한 말은 나의 가슴 깊은 데 들어앉아 있다. 그 후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가수의 음악일수록 1집에 의미를 두곤 했다. 하현상의 데뷔 앨범명이자 동명의 타이틀곡 ‘Dawn’은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씨앗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은 하현상이 하고 싶고, 해왔고, 해 나갈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구나. “대신 울어줄 수 있을 거다.” 아티스트로서의 역할을 그리 생각했다던 하현상은 자신을 잘 아는 구나. 그 자각이 퍽 부러웠다.


@Unsplash, Daniel Burka / Lucija Ros






함께 나누고픈 메시지 : S#21. 등대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솔로 가수의 공연에는 불가피한 여백이 있다. 무대 가장 앞에 홀로 선 사람의 책임감. 곡과 곡 사이,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신다. 악기를 다루는 가수라면 악기를 바꾸고 조율을 하기 위한 여유가 더욱이 필요하다. 나는 그럴 때면, 숨죽인 관객석에 그가 초조해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관객 역시 그 순간의 어둠을 가만히 느껴주길 역시 바라며. 다행히 이건 그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자신은 어땠을지 몰라도 그의 여백은 제법 그의 속도와 발을 맞춘 듯 보였다.


작년부터 나를 만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곧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 나의 감정은 언제나 거친 풍랑과 같아 이것을 다스리는 일을 인생의 과업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바다의 격렬함을 경험하고자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바다는 내 세계의 일부. 떼어낼 수 없으나 결코 전부는 아님을 알자 비로소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돌봄으로 마음의 풍랑을 벗어나 평안한 육지에 이를 수 있길, 소망한다.


@Unsplash, Paul Green / Louis 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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