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언제 집을 사고 차를 사냐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매운 걸 먹는 거, 비싼 옷을 사는 거, 데드라인이 닥치기 전에 일을 미리 하지 못하는 거 등등.
그중에서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영 못하겠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뱉는 거다. 1년 하고도 반을 일했던 첫 직장에서 그 말 하나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딱 1년만 채우려고 했던 곳인데, 그 말 하나를 못해서 몇 개월을 더 다녔으니.
"그만두겠습니다"
막상 팀장님을 불러 '퇴사 의사를 알릴' 자리를 만들었더니,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닐 이유보다 못 다닐 이유가 많았던 그곳에서 버틸 만큼 버텼음에도 그 한마디 말이 나오질 않아 아주 긴 서론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사실 제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참 오래 걸렸는데요. 사실 팀원 OO가 나가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정했던 일이었는데요. 물론 이런 점에서는 회사가 참 좋은데, 이런 부분이 저를 힘들게 해서요. 팀장님 말고는 모두 다 알고 있던 나의 퇴사 의지에 대해 굳이 납득시킬 필요 없이 의견만 전하면 되는 일이었음에도 최선을 다해, 애를 써서 설명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빙빙 둘러말하는 걸 싫어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둘러말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 그러니까 다름이 아니고요.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려고 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은 끝에 드디어 그만두겠단 말을 꺼냈지만 팀장님의 사정에 넘어가 1개월을 더 일했다. 볼꼴 못볼꼴 다 보고 결국은 무사히(?) 퇴사했으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도대체가 그 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지금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다.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이 내 발목을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무수히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근무기간이 정해져 있는 일이 아닌 경우에는 그만둬야 할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 말 하나를 못해 혼자 끙끙 앓았다. 괜찮다가도 그 이야기를 꺼낼 생각에 체하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일했던 한 카페에서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 해 무려 3년을 일했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취업 전까지 일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 자발적 노예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거 진짜 문제구나.
여전히 그만두겠습니다(=더 이상 못해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여러 번 애쓴 끝에 한 가지 얻게 된 작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바로 나 없어도 이 곳은 어떻게든 잘 돌아갈 것이란 거다. ‘그만두겠습니다’ 라는 말을 늘 힘겹게 여겼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 말고 이 일을 할 사람이 있을까. 나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이렇게 그만두면 사장님(혹은 동료)이 너무 힘들 텐데'였다. '가게도 바쁜데 또 사람 구하고 일 잘할 수 있게 교육하고, 동료들도 힘들고 점장님도 힘들겠다. ' 뭐 이런 세상 이타적인 생각들이 그 말 하나를 그렇게 어렵게 만들었더랬지.
쓰라린 사실이긴 하지만, 남 걱정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고. 나만큼은 모르겠지만 일을 배워서든 어떻게서든 일이 돌아갈 만큼 해낼 사람은 많다. 그만두기 전날 밤, 눈물 흘리며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쪽지를 써 초콜릿 과자와 함께 전달했던 첫 아르바이트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카페는 잘되고 있으니, 아마도 내 뒤로 많은 사람들이 아르바이트생으로 그곳을 거쳐갔을 거다. 자발적 노예가 될 만큼 애썼던 아르바이트생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참 부질없는 걱정이었구나 싶다. ‘그만두겠습니다'는 여전히 아직도 어렵다. 몇 번의 그만둠이 쌓여야 편해질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다른 사람을 걱정하느라 뒤척이며 밤을 새웠던 그날들의 나에게 그냥,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더 이상 못해먹겠을 때, 그때는 나를 조금만 더 생각하자.
드라마처럼 멋지게 사직서는 못 던지더라도 적어도 눈 똑바로 보고 흔들리지 말고.
그만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