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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이니 Jun 29. 2024

02. 포장과 핸드 카트에 친숙한 당신이 진짜 기획자

이게… 맞나?

얼떨결에 되어버린 기획자로서의 일기를, 고독한 살아남기 팁을 쓰겠다던 포부는 어디로 가고 어느새 일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쌈닭이 되어버린 2년차 기획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일 년에 한 편씩 쓰는 것도 답이 될 수 있겠다.)


오랜만에 글을 쓰기 , 제품기획자의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봤다. 상상해왔던 업무와 실제로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  사이의 간격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지점을  이야기로 삼고 싶었다.  순간  앞을  지나가는 테이프들.. 그러니까 진짜 박스 테이프들과, 끈적한 손과, 수많은 무지 박스와 입고증들. 그렇다. 기획자(또는 제품기획자) 반드시 스쳐 지나가야 하는 일이자 뗄레야   없는   하나는 바로 ‘물류’, ‘입고, ‘포장이다.



제품을 만드는 제품기획자라면 응당 능수능란하게 박스를 옮기고 테이핑을 하고 물류 입고를 위한 기본적인 차량 정보를 알아야 한다. 왜 그러느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면 대략 기획 - 소싱(적합한 제조공장을 찾는 과정) - 샘플링 - 샘플링 - 샘플링 - 발주 - 생산 - 입고 정도로 정리할  있다. 그러나  과정을 뜯어보면 무수히 많은 실무와 변수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가장 마지막 단계에 위치한 ‘생산 - 입고 사이 중간 과정을 조금  들여다보자.


제품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OEM 공장이나 소비자에게 다시 판매를 해야 하는 브랜드사일 경우, 보통 제품이 물류 창고로 입고된 후 온라인 구매 고객 또는 오프라인 판매채널로 이동한다.


)

공장 -> 창고 -> 오프라인 판매처(직영 매장 등)

공장 -> 창고 -> 온라인 구매자 개별 발송


 ‘창고 단계자체 물류사 또는 3PL 이라고 불리는 3 물류 창고를 거치게 되는데 제품의 가짓수가 많을수록, 크기가 복잡할수록 입고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은 더욱 많아진다.


물류 창고로 입고된 제품들은 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나가는 숙명을 타고 났기 때문에, 창고에서 근무하는 인력이  쉽고 빠르게(물류 효율을 위해) 제품을 찾고 패킹할  있도록 입고되는 모든 품목은 일련의 기준에 부합한 상태로 입고되어야 한다.


이때 완제품(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완전한 형태의 제품) 제품 위가 아닌 상하차, 보관의 효율을 위해 아웃박스(또는 카톤박스)라고 불리는 상자 내에 들어가게 된다. 매번 박스를 열어보고 제품을 출하할 수는 없으니,  박스마다 어떤 제품이  개씩 들어가 있는지, 사용기한은 얼마나 되는지, 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에 대한 세부 정보들이 적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사람이 운영하고, 사람은 언제나 실수를 한다는 것. 입고 전에 문제가 생기거나 입고 후에 발견되는 문제는 제품기획자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문제들은 대략 이렇다.


- 쉬핑마크 누락

- 바코드 오부착

- 패킹 오류

- 구성품 누락

- 개별 박스 파손으로 인한 재패킹

- 패키지 내에서 제품이 모두 파손


이런 경우 대개는 지방/경기 외곽에 위치한 물류 창고로 이동해 땀을 뻘뻘 흘리며 상황을 수습한다. 예기치 못한 문제로 인해 시간/비용적 손해를 볼 다양한 부서들에도 연신 사과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 개인의 능력치가 있다면 팔다리의 근력,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물류 창고의 수많은 렉장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카트 운행 능력, 무거운 박스 테이프를 쫙쫙 뜯어서 H 라인으로 부착할 수 있는 수평-수직 감각 정도가 되겠다.


칠판에 멋진 텍스트들을 써가며, 제품들을 이리저리 만지며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는 기획자를 꿈꿨지만 현실은 박스와 물류창고의 후덥한 공기 속에서 제조사 담당자와 한번 더 체크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는 순간이 많다. 재밌는 점은 그렇게 굳이 할 필요 없을 고생을 한번이라도 더 한 제품에 약간의 애정이 더 생긴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 속에서 제품이 태어난다. 그 제품이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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