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업하는 선생님 Apr 16. 2023

자유를 구속하는 속박들

돈이 모든 것의 답은 아니다



얼마 전 그리스 작가 키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공부하는 중 자유를 구속하는 세 가지 속박에 대해 유시민 작가가 알려주었습니다. 


첫 번째 구속은 물질의 결핍입니다. 물질의 구속이 줄어들어야 자유로워진다. 

두 번째 구속은 부당한 제도의 구속이다. 신분제도 속 노예에겐 신체와 사상, 표현의 자유가 없다. 

세 번째 구속은 생각과 관념의 구속이다. 종교의 교리, 의전과 행위양식, 그 당시에 사람들을 옭아매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속박을 받으면 우리는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 첨언해 여기에 네 번째 구속으로 '감정적 고통의 구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격렬한 감정에 좌지우지되고 근심과 걱정에 시달리고, 부 - 명성 - 권력 등에 사로잡힌 상태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네 가지 속박에 대한 명제는 물질에 집착하는 저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먹고사는 것에 바쁘고, 또 돈... 돈... 거리며 물질에 집착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많은 돈, 명품 시계, 강남 아파트 이런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개념을 처음 접할 땐 저에겐 너무나도 획기적인 사상이었습니다. <부의 추월차선>,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등 경전에 담겨 있던 내용도 저희에게 깨닫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말 2일의 자유를 위해 평일 5일을 직장에 팔고 있다….

우리는 fxxk you money를 가져야 한다. 직장 내 부당한 괴롭힘을 당하면 '일 못해먹겠네! fxxk you’라고 외치고 나갈 수 있는 바로 그 돈이 우린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운신의 자유를 얻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는 물질의 부족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물질의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자산과 현금 흐름을 창출해 '경제적 자유'를 얻자!



너무나도 달콤한 이론이었고 마주한 현실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이었습니다. 가치관의 부재로 나타나는 개인적 불안정 상태의 해독제였고, 삶의 가치와 목적 상실에 삶에 하나의 지평선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탐닉했고, 새롭게 뜬다는 스마트 스토어, 인플루언서 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는 물질의 결핍이란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적 자유'라는 생각과 관념에 구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확고하게 느낍니다. 날 구속하는 것은 물질의 결핍뿐만이 아니구나, 오히려 다른 곳에 집중해야 할 때이구나.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글을 쓰려면 일 년에 500파운드(현재 약 4000만 원 정도)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방 한 칸에 1년에 4000만 원 정도의 소득만 있기 시작하다면 물질의 결핍은 더 이상 우리 자유에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성인이 되어 알바만 열심히 해도 받을 수 있는 돈 정도면 우리의 행복과 자유 추구에 문제 걸림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몰입해야 할 것은 ‘부당한 제도’.’생각과 관념’, ’감정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위 명제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경제적 자유를 좇아 주식, 코인, 부동산, 짠테크에 몰입할 때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들이 절 더 행복하게 만들었고 절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고, 신이 주신 저의 잠재력을 더 더 잘 움티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릴 수 있고, 굶을 줄 아는 것


해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선, 싯다르타(부처와 동명이인, 작중 주인공의 이름)는 관능적인 외모와 만인에게 주목받는 여성 카밀라에게 오랜 구도 생활로 허름한 채임에도 과감하게 대시합니다. 카밀라는 자신에게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싯다르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생각할 줄 압니다. 기다릴 수도 있고, 굶는 것도 할 줄 압니다.” 이 말을 카밀라에게 던질 때엔 싯다르타는 당연히 거절을 받지만 이 세 가지 덕목을 바탕으로 카미스바미라는 상인과 함께에 영화를 이루었고 카밀라를 쟁취하게 됩니다.



저는 처음 '싯다르타'를 읽을 때 저 담화 속 담긴 지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조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생각할 줄 아는 것은 '생각과 관념의 구속'으로부터 그를 해방시켰습니다. 기다릴 수 있는 것은 '감정적 고통의 구속'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굶을 줄 아는 것은 '물질적 갈망'에서 싯다르타가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속적 성공과 여성에게 사랑받는 것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영적인 행위가 결국 사회적 성공, 여자, 해탈까지 싯다르타를 이끌었습니다.




<돈이 널 자유롭게 하리라>,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다. 미칠듯한 행복은 살 수 있다.> 이런 명언들은 어느 한 차원에서 맞는 사실입니다. 저도 이 명언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여정동안 얻은 지식과 지혜는 지금도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행복을 만든다라는 유물론적 차원에서 벗어나, 정신 - 마음 - 관념적 차원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일 수 있음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차고 있는 롤렉스 시계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사람 자체를 궁금해합니다. 


마틴 루터 킹, 간디, 케네디 등 영적 지도자들의 자기실현을 넘어 타자에게 기여하고자 하는 '자기 초월'의 행위가 그들이 현생을 살아갈 때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이끌어냈고. 그들의 사후엔 불멸의 아이콘으로 그들을 기억케 했습니다. 



어쩌면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 올바르고 멀리 보면 더욱 빠른 길일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