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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업하는 선생님 Mar 24. 2023

다양성이 죽자, 모두가 죽고 있다

극한의 경쟁사회 대한민국

양동이 안에 들은 게



양동이 안에 담아둔 게를 본 적이 있는가? 어부들이 게들을 양동이에 넣어두고 얼마 뒤에 돌아오면 게들은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양동이 안에는 발이 떨어지고, 집게가 떨어진 게 들이 모여있다고 한다.


게들은 양동이 바깥으로 탈출하고 싶고 그러기 위에서는 누군가를 밟고, 잡아당기며 올라가야 한다. 결국, 누군가가 탈출하려고 하면 다른 게들이 끌어당기고 자기 발밑에 두려고 한다고 한다.



나는 이 양동이 안에 갇힌 게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









다름을 인정 못하는 사회, 대한민국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는 직업과 연봉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등급을 매긴다. 이걸 기반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한다. 과거 <가발의 크기와 화려함>으로 사람의 지위를 구별하듯 이제는 어느 아파트에 거주하냐 와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SKY의 졸업장이 사람을 구별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이상할게 하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유독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있는 부분은 바로 '다양성'의 부족이다. 호프 스테드라는 학자가 만든 5가지 카테고리별 문화 지수를 보게 되면 주목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 지수들을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타국가와 비교해 <극단적으로 안정을 추구해 불확실한 상황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하며>, <장기계획 중심적이고>, <인생 막 사는 걸 인정하지 못하며>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이 부분들을 종합해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집단적'으로 정해진 '장기적'이며 '안정적'인 경로를
추구하는 성격이 강하며,

반대로 이 경로를 이탈한 '자유로운 영혼'을
'집단적'으로 인정 못하는 사회





'자유로운 영혼'을 '집단적'으로 인정 못하자. 삶에 여정의 다양성은 인정되지 못했다. 다른 경로를 인정하지 않고 한 경로만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이 한 가지 잣대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결국 다수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 못 간다고 인생 망하는 것도 아닌데 다양성을 인정 못하는 사회 분위기는 자아 개념이 확실히 생겨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강박, 불안함, 다수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었다. 청년세대가 과거 세대처럼 의욕적이고 진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것은 학창 시절부터 계속된 누적된 패배경험에 발미 해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집단주의적'이다...?  전체주의(totalism)는 특정 민족, 국가, 이념을 그 무엇보다 우위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물고기의 물과 같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인권(자유, 평등,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 사회권...)보다 그 이념이 우선시 되는 것이다. 과거 '나치'는 위대한 게르만 민족을 부르짖었고, '일본제국'은 황국신민의 기치 아래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돈'과 '물질'을 그 무엇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즉,  
돈과 물질을 숭상 시 하는 '자본주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끔찍한 혼종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다름을 인정 못하고 돈과 물질을 숭상하면 필연적으로 극한의 경쟁사회가 된다. 우리는 '돈과 사회적 지위'라는 한 가지 코스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를 밟고 끌어당기며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돈 그 자체가 주는 행복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세워진 피라미드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기 아래에 놓는 것이 중요한 사회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주변 사람보다 열등한 위치에 존재하면 참을 수 없는 불안함과 열등감을 느끼고, 우위를 차지하면 마음 한편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는 슬프게도 서로를 밟고 끌어당겨 닿지 못할 정점을 향해 닿아야만 한다. 우리는 '양동이 안 게'(crab in the bucket)이다.  


 





시기와 질투에서, 연대와 다양성 존중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밟고 있는 게... 그 게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그 게가 나쁜 걸까? 게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다. 물론 굉장히 저급하고 미성숙한 방식의 경쟁방식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지고, 상해를 입히고 마음의 상처를 입힌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하지만, 진정 잘못된 문제의 근원은 '주어진 시스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극복해야 할 난관은 '양동이'다. 양동이 속 게들이 탈출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양동이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경쟁'이 아니다. 
서로를 밖으로 끌어당겨주는 '친절과 연대'이다. 


나의 길을 걷는 구도자를 경멸하는 태도가 필요한 게 아니다. 
타인의 길을 용인하는 '다양성 존중'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사회가 제시한 양동이에 스스로를 가둬두는 '제한적 사고관'이 아니라.
 나의 여정을 찾아 걷는 '주체적 사고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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