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민 Aug 27. 2023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경찰이었던 학부모...

17년 전이었을 것 같다.

막 교직 4년 차에 접어들었던 나는 장난꾸러기 3학년 담임.

우리 반에 유달리 장난을 잘 치던 민호(가명).

내 눈을 피해 온갖 장난을 쳤던..

내가 칠판에 판서할 때 친구를 툭 건드리고

내가 휙 돌보면 아닌 척.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민호의 장난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냥 3학년다운 장난꾸러기 행동이려니...

내 어렴풋한 기억에 교사에게는 예의가 발랐고 다른 아이들보다 유달리 교사 앞에서는 긴장하는 듯하고 수줍어하고 말을 잘 듣는 척을 했는데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시간에는 친구에게 과하게 행동하고 온갖 짓궂은 행동을 해서 참 특이하다 싶었다.

보통 장난이 심한 친구들은 교사 앞에서도 조금은 가볍게 행동하기 마련인데 민호는 친구와 교사 앞에서의 행동이 극과 극이었다.

내가 그리 엄한 편도 아닌데 내 앞에서 경직되고 각을 잡았다.


당시 나는 쿠폰제를 했는데 칭찬점수가 모이면 쿠폰을 받게 되고 그 쿠폰의 내용은 다양했다.


숙제 1회 면제

급식 1등 먹기

일기 1회 면제

청소 1회 면제

원하는 짝 앉기....


등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들의 쿠폰들


민호도 쿠폰을 받게 되어

자기랑 친한 영준이를 짝으로 선택했다.


그날.. 밤 12시쯤.


그때는 담임들의 핸드폰을 학부모에게 다 알려주는 시대였다.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학급소통앱이 잘 되어있어서 굳이 개인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남편퇴근이 늦었던 때라 잠을 설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밤 12시에 모르는 전화번호를 받기가 찜찜했지만

받아야 할 것 같아 받았는데


민호아빠라는 분이었다.


"선생님.  우리 애가 다쳤는데 알고 계신가요?"


"네? 민호가 다치다니 저에게 민호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니 애가 다쳤는데 왜 모르실 수가 있죠? "


"제가 어떻게 학급의 모든 일을 다 알 수가 있나요? 제가 민호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민호가 다쳤으면 저에게 말을 해 줘야죠."


" 아니.  선생님은 어려운 존재인데 감히 애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 그 당시는 그래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스승을 존중하라는  말이 조금은 남아있었나 보다.

그럼 아버님은 그런 어려운 존재에게 밤 12시에 전화도 하시네요)


" 제가 회식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니 민호가 목이 뻐근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속상해서 전화했어요......"

술을 좀 드신 듯 하다.


그 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교사여도 모든 애들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는 없다. 다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하라고 해라. 그리고 민호는 자기랑 친한 애랑 짝이 되었고 둘이 싸운 건 아니고 장난치다 그런 것 같다. 내일 알아보겠다.

계속 민호아빠와 언쟁이 있었고

마침 옆에서 민호아빠를 말리는 민호엄마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다음 날

민호 엄마가 아침에 나를 찾아와서 울면서 미안하다며 편지를 주고 가셨다.

자신이 남편을 말렸지만 무례하게 전화를 한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 민호를 잘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민호 어머니는 평소에 학급일을 잘 도와주고 교사에게 늘 겸손한 분이었다.

나는 괜찮은 척 알겠다고 했지만 민호가 평소 장난이 심해요.라는 말은 해주었다.

알 건 알아야 하니까.. 아마 알 것이다. 엄마는.. 1.2학년 담임들이 이야기해 줬겠지.

그나마 평소 나는 민호의 단점을 먼저 말한 적이 없고 잘하는 점 위주로 늘 긍정적으로 말해왔고 민호 엄마도 나를 믿고 학급일에 적극 도와주시던 분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나마 나를 조금은 신뢰하고 있었으리라 짐작을 해 본다.


너무나 분개한 마음으로 민호를 불러 내용을 알아보니 민호는 자기랑 친한 영준이랑 짝이 되어서 너무나 신났고 내 눈을 피해 목을 감는 장난을 쳤고 영준이도 민호 목을 누르고 감다가 민호 목이 삐끗한 건데 민호는 지가 장난치다 일어난 일이니 차마 나에게 말을 못 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랑 친한 영준이 때문에 다친 거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당장 짝을 원래대로 원위치했고

영준이 어머니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고

영준이 어머니도 뭐 그런 일로 선생님께 전화를 하냐며 치료비는 제가 낼게요. 하셨고

그 뒤 쿠폰제는 사라졌고

지금까지도 쿠폰제는 하지 않고

그 어떤 이벤트도 잘하지 않는다.

만약 당시 학폭제도가 있었다면 더 시끄러웠을것이다.

솔직히 나름 귀여웠던 민호에 대한 내 마음은 차갑게 식었고 내 마음속에서 로그아웃 시켜버렸다.


교사들은 민원으로 점점 하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래서 어쩌면 나이든 교사는  열정이 사라지는 거라고 하는지도....



왜냐면.. 트라우마가 되어서다..

처음 받아본 민원이었고  신경이 예민한 나에게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그때 잉태되었을 나의 둘째가

20주쯤 사산되어서..

나는 그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고 확신한다.


지금 곰곰이 분석해 보면

민호 아빠는 경찰이었고 경찰만의 꼿꼿한 기상과 규칙, 준법을 강조하시는 분이실 테고

아마 민호를 엄하게 훈육하는 분이었을 것이고 반면 민호 엄마  매우 유하신 분이셨는데 다소 성격이 강한  민호아빠에게 눌려 사는 느낌을 받았다.

(교사의 촉은 꽤 믿을만하다)

민호도 그런 아빠밑에서 엄격하게 자랐으니 그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해소했던 아이일 것이다.

선생님 앞에서는 각을 잡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눈에 보이지 않게 장난치는 걸로 풀었을 것이다.

민호 엄마는 학교를 드나들며 담임들에게서  민호가 장난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민호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말해봤자 애를 잡을게 뻔하니...

민호아빠는 민호가  학교에서 큰 말썽 없이 교사에게 예의 바르고 잘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퇴근하고 오니 아이 목이 잘 안 돌아간다 하고

아이는 자기가 장난친 걸 차마 이야기 못하고 친구가 그랬다고 했겠지. 애가 이 지경인데

담임은 이것에 대해 전화도 안 오고 화가 났으려나.


못다 한 이야기를 하자면,,,


민호아버님,,

교사가 교실에 있다고 모든 걸 알지는 못해요.

수업준비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전화도 받고 업무일도 하고

민호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친구 때문에 다친 거라면 민호가 먼저 교사에게 말을 하라고 교육시켜 주세요.

교사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을 못 하나요

그리고 친구를 탓하기 전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지 되돌아보라고 하세요.

학교에서는 친구에게 신체적으로 손대지 말라고 거의 매일 가르쳐요.

교사를 원망하기 전에 자녀를 먼저 살펴보세요.

그리고 민호에게 너무 엄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세요. 보통 집에서 엄하게 큰 애들이 학교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거예요.

이건 23년 경험상 확률적으로 꽤 그래요.


그리고 인간적으로 밤 12시에는 전화하지 마세요.

제가 밤 12시에 화풀이 전화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민호가 실종된 일이 아니라면요.

경찰이시면 어쩌면 교사보다 더 심한 민원과 힘든 업무를 하고 계시겠지요.

그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의 행태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실까요

저는 경찰관님,소방관님, 특수교사들은 늘 지지하고 정말 어려울 일 하시는 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거 저거 떠나서 그래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려면

 우리 모두 각자 남탓을 하기 

자신부터 겸손해지고 성찰하는 마음가짐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어디선가 이 글을 꼭 보셨으면....


<전북 소담이 선생님 글>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