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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29. 2021

오만과 편견 그리고 관계에 대하여

Grayscale


흑과 백 그 사이 만들 수 있는 회색은 몇 가지가 될까. 단순한 삶을 살고 싶은 나는 앞으로 내가 마주해야 할 회색은 한 가지였으면 좋겠고 그보다 더 베스트는 흑과 백 딱 두 가지의 선택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두 가지 옵션만으로는 부족한 듯 다양한 회색을 제공한다. 흑과 백이 섞여 다양한 회색이 되어가는 과정에는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누군가는 흰색에 가까운 연회색을 선호할 것이고 누군가는 검정에 가까운 진회색을 선호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회색을 만들기 위해 흰색과 검은색이 있어야 한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색을 바라보는 시각, 이해하는 방법은 개개인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이 둘을 혼합했을 때 나오는 색을 설명하기 위한 기준은 그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 다르다.



무채색 팔레트



며칠 전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화한 '오만과 편견'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에 대해 편견을 가진 여자와 여자 주인공에게 오만하게 행동하는 남자.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가문, 명예, 재산을 따져 배우자를 선택하던 시대에 조건만을 보고 결혼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여자 주인공. 그런 그녀에게 남자 주인공의 내로라하는 재력은 매력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와 관련한 몇몇 사건들로 인해 남자를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하다고 각인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법, 마음을 표현하는 법에 서투른 남자 주인공. 그는 일반적인 여자와는 다른 그녀의 매력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어 고백을 하게 되는데 쌓일 대로 쌓여버린 오해로 인해 여자는 되려 화를 내게 된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오해를 풀기 위해 그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편지를 받은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오해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제야 지금까지 그의 행동이 다른 남자와는 달리 솔직한 것이었으며 경솔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결론은 해피앤딩.


그렇다면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일까. 남자 주인공과 그의 친구가 나눈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여자는 그 단편적인 대화를 통해 그를 정의해 버렸고 그 편견은 또 다른 사건들로 인해 더 견고해져 자신이 만든 편견이 그 사람이라 확신하게 돼버렸다. 반면 남자는 자신의 기준이 곧 정의이며 바른 방향이기 때문에 솔직하기만 하면 된다는 전제로 액션을 취해왔다. 또한 그런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서 나온 그 행동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며 오해를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그의 모습은 그녀에게는 오만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수는 없다. 또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말도 생겨 난 것이 아닐까. 유연한 사고와 오픈마인드는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상대방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하는 나만의 사고방식은 이렇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비록 그것이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이유라 할지라도.

단편적인 행동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정의 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자신이 단편적으로 평가되고 정의 내려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속단하지 말아야 하고 속단되지도 않아야 한다. 그건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 갈 기회를 놓치는 일이기도 하고 그 상대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 조차 차단해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편견을 가지고서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융통성을 가지지 않으면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돌아와, 모든 선택이 흑과 백, 오직 두 가지만 있었다면 이 세상을 훨씬 더 단순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수십 가지의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또 다른 수천수만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을 타인들과 마주하여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내가 원하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보게 된다면 놓쳐야 하는 것들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더 복잡한 관계와 상황이 발생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각자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를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에 쉽게 휩쓸리지 않도록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을 단순화하고 조절해야 하며 상대를 통해 느끼게 될 감정에 대한 책임, 선택과 판단은 그들에게서 오는 게 아닌 자신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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