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옥 May 21. 2023

나의 도깨비 신랑

당신이 필요해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혈압이 222입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의사 말에 놀란 남편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인지 몸살 기운이 몰려왔다. 토요일이라 종합병원과 한의원을 들러 치료를 받았다. 잠이 오지 않아 '도깨비' 드라마를 네 시간 정도 연이어 보았다. 저녁이 되자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집에 있던 두통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사 온 두통약을 두 알이나 먹었는데도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남편은 응급실에 가자고 했지만, 참을 수 있을 거라며 거부했다. 고집스러웠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전에 응급실에 가자는 말을 했지만,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남편은 삼겹살을 굽고 된장찌개를 끓여 저녁상을 차렸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만 술을 마시기로 다짐한 날이었다. 술잔을 들고 있는 남편을 보며 불안했지만, 이미 술이 들어갔다. 두통이 점점 더 심해졌고, 남편은 다시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세 알이나 먹은 두통약이 곧 효과를 볼 거라 믿으며 거부했다. 하지만, 내 판단은 오산이었다. 두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지자 남편은 택시를 불러야겠다고 했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그는 직접 운전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화를 냈지만, 남편은 아파하는 나를 위해 이성을 잃고 있었다. 결국 아들을 통해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나는 뒷좌석에 누워버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의자에 누웠다. 머리가 너무 아파 눈물이 나왔다. 놀란 남편이 급한 사정을 설명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순서를 건너뛰고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혈압은 222에 달했고, 긴급하게 뇌 CT와 피검사를 진행했다. 혈압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진통제를 두 번이나 맞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나는 울며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한참 후에 혈압이 175로 떨어졌고, 머리 통증도 조금 가라앉았다. 응급실 의사는 퇴원을 권하며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우리는 진통제와 어지럼증 약을 받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극심한 두통 속에서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남편이 선물해 준 개망초였다. ‘도깨비’ 드라마를 보던 중, 도깨비 신부가 받았던 메밀꽃을 보고 나도 꽃이 받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차를 놓고 와서 꽃을 사지 못했다고 했었다. 다음 날 그의 손에 보라색 개망초가 들려 있었다. 꽃을 들고 온 남편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 남자는 마치 드라마 도깨비 신랑처럼 내 바람을 이루어주는 신랑이다.



아픈 나를 보며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의 걱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면서, 내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느꼈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날 집에서 무서운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끈질긴 권유 덕분에 응급실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극심한 고통, 죽을 만큼의 두통이 무서웠다. 세상이 꺼지는 듯한 세상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듯한 어지러움, 머리를 누군가 심하게 두드리는 듯한 두통 그 아픔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더 이상 이런 고통은 안 겪어야지 다짐했다. 운동을 해야겠다. 살기 위한 운동 말이다. 건강하게 지내자. 남편을 위해서라도.



아침에 일어나 나를 안던 그가 말했다.

"제발, 아프지 마아."

그를 위해서 빗방울까지 조심하기로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 오는 날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