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병실, 탁한 공기, 많은 환자 중 나이 많으신 환자가 80% 이상이었던 병원에 3일 동안 입원했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풍겨 나오는 눅눅한 냄새, 화장실 곳곳에 핀 곰팡이,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병실, 낡은 이불, 떨어진 환자복, 서랍장에 풍겨 나오는 묵은 먼지 냄새, 녹슨 침대로 이곳이 병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환경이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많았다. 무엇 때문일까? 의아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믿고 따라야 하는 환자다.
다행인지 입원 후 하루가 되자 몸이 적응했다. 냄새에 민감한 후각도 둔감해지고 낡고 허름한 것들도 넘어갔다. 고무줄이 꽉 조인 짧은 바지와 오른쪽 팔꿈치에 구멍 난 환자복을 입고도 개의치 않았다. 낡은 이불은 생각 이상 따뜻했고 세탁 후 풍겨 나오는 깨끗한 향기 때문에 견딜만했다. 그보다 다행인 점은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태도다. 간호사의 친절함은 낡고 허름한 병실을 맑게 했다. 환자에게 다가가 어떤 점이 불편한지, 어디가 아픈지, 필요한 건 없는지를 끊임없이 물었고 세심하게 보살폈다.
가장 안심이 되었던 건 의사의 정확도 때문이다. 여러 의사를 거치면서도 잘 낫지 않아 고생했던 발목 통증 원인을 단박에 잡아냈다. 엑스레이 두 장만으로 인대에 이상이 있다는 걸 파악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MRI를 찍어 보고 인대가 끊어졌다면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MRI는 적은 금액이 아니며 더 큰 걸림돌은 신뢰가 문제였다. 과연 이번 의사 말도 믿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발목 수술은 나에겐 중요한 수술이기에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싶었지만 대학병원 예약이 쉽지 않았다. 12월쯤이나 되어야만 진료가 가능했다. 대학병원에 가더라도 진료의뢰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길 전해 듣고 진료의뢰서를 떼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MRI를 찍어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는 말에 결심했다. 일단 이곳에서 MRI를 찍기로 과감하게 배팅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일이다. 10개월째 접어든 통증을 달고 12월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다.
MRI를 찍고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다행히 인대가 30%가 남았으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뼈에 물이 차 있어 약을 복용하면서 발 근육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다섯 가지 운동 방법을 직접 시연해 주며 매일 운동하길 당부했다. 일반 환자와 달리 나는 여러 번 접질렸고 그때마다 손상되었던 인대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남은 인대 30%로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발목 근력이 중요하다. 만약, 다시 한번 접질렸을 때는 기필코 깁스하길 당부했다. 30%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깁스는 필수다. 파열된 인대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하면 다시 붙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다시 붙을 수 없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주 이런 실수를 한다. 참고 인내하는 건 병에서는 중요한 게 아니다. 병에서만큼은 버려야 할 덕목이다.
병실에 돌아와 밴드와 하프짐볼을 구입했다. 하프짐볼을 고르면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번에도 의사 말을 믿는 게 최선인가? 제대로 내린 처방이 맞은가? 의사의 실력은 어느 정도지?'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의사에게 그동안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자 그래서 마지막으로 환자를 치료한 환자가 명의라는 소리를 듣는다 말했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 건 네 명의 의사를 거쳐 이곳에 오게 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0개월 동안 발목 상태가 좋아지질 않자 여러 병원을 찾았다. 마치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유목민처럼. 새 의사를 만난 후 새로운 의견이 나올 때면 '아, 그래서 안 나았던 거군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아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증상이 악화될 뿐이었다. 의사 말을 믿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마지막이길 희망하는 의사 말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지만 불안은 여전히 저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앉은 상태다.
이 병원 오기 전 나를 치료한 의사에게 물었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재활 운동은 없느냐는 말에 움직이지 말길 당부했다. 재활 운동은 필요 없고 걷기 30분을 하되 시간이 지나면 1시간으로 연장하라는 말뿐이었다. 처방대로 했지만 더 나빠지는데 어떡하느냐고 말했을 때 안 되면 대학병원으로 가든지 하자며 무책임한 말을 내뱉었다. 무성의한 태도가 불만이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두 달이나 이런 의사에게 시간을 투자했다는 게 화가 났다. 지금 병원 의사는 남은 인대가 약하니 재활 치료로 발목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할지 답답했지만 지금은 의사 처방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의학적 지식이 없으니 말이다. 알지 못하니 의사의 처방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 글자를 모르면 읽어준 대로 받아들이는 문맹아처럼 의사는 의학문맹인 환자에게 절대자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절대자의 말을 거부할 환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의사는 환자에게 신과 같은 존재며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다. 그래서 무지가 무섭다. 모르면 당하기 마련이다. 하긴 몰라서 당한 일이 어디 의학 쪽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