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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Feb 05. 2023

세상은 산이다

『상자 밖의 사람들』


"세상은 산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마다 당신에게로 메아리쳐 돌아올 것이다. '나는 멋지게 노래했는데 산이 괴상한 목소리로 메아리쳤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말과 행동이 곱지 않은데 어떻게 예뻐할 수가 있겠어?"


그녀가 미웠다. 그녀를 싫어할수록 비난할 행동만 보였고 덩달아 마음은 지옥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나를 배반했다. 그 상처가 깊게 남아 치유되지 않았다. 살짝 건드려도 쓰리고 아팠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깊숙이 그녀를 미워하는 감정이 똬리를 틀었다. 그녀를 싫어하는 감정은 나의 얼굴과 행동으로 나타났다. 나는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니 당연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퉁명스러워졌다. 



관계는 나빠지고 비난할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났다. 비난할수록 괴로운 건 나였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았고 책도 읽었다. 세네카의 『화에 대해서』 『상자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읽었고, 몽테뉴 『수상록』에 기록된 "분노에 대하여"를 펼치기도 했다. 화를 안고 있는 사람은 불덩이를 손에 들고 있어 오히려 자신이 다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움을 내려놓기로 다짐도 했다. 인식한 지혜를 실천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녀를 용서하지 못했다. 나는 배반이라는 상자 안에 갇혀버렸다. 그로 인해 일반적인 상황마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용서하려 노력할수록 마음속은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써 웃었지만 기만이었다. 맘속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은 채 괜찮은 척 나를 속였다. 원망을 걷어내지 못한 채 길어 올린 물이 맑을 리 없었다. 머리로는 가능한 용서가 가슴으로는 쉽지 않았다.



"상자 안에 있을 때 남들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진실 가운데 하나는 상자, 그 자체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약화시키고 최선을 위한 우리의 의지를 꺾어버린다는 겁니다"  『상자 밖의 사람들』의 내용처럼 용서할수록 상자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나를 발견했고 용서하려는 의지도 덩달아 껶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은 차라리 위로가 되었다. '저러니 내가 미워할 수밖에 없지.' 쯧쯧 혀를 찼다. "비난할수록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만큼 정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그릇된 행동이 결국은 나 자신을 정당화시켜 주는 행동이 되는 것이죠" 『상자 밖의 사람들』의 글귀처럼 나는 탁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되돌아온 메아리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비난했고, 그녀의 그릇된 행동을 보면서 그녀를 미워하는 게 당연하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탁한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말이다.



함께 화음을 맞추기 위해서는 튀는 목소리를 덜어내야 한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상대방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야 화음을 맞출 수 있다. 내 목소리만 아름답다고 높이는 건 소음일 뿐이다. 배반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모든 행동을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볼 필요는 없었다.



고슴도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치켜세운다. 그녀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의 날을 세웠을지 모른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으니까. 관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해 미움을 내려놓기로 했다. 아니, 내가 편해지기 위해 미움을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했다. 뜨거운 돌을 쥐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분노를 손에 쥐고 있으면 화상을 입을 사람은 나일 테니 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 때문에 현재를 망칠 필요가 없다.



상자 밖으로 나와 그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내 목소리가 아름답지 못하면서 그녀의 갈라진 목소리를 탓하면 안 되었다. 상자가 만들어놓은 생각에 갇히면 안 되는 이유다. '나는 멋지게 노래했는데 산이 괴상한 목소리로 메아리쳤어.'라고 말하지 말라고 류시화 작가가 말한 것처럼 상자 밖으로 나와 내 목소리를 살펴야 할 시간이다. 이제 나의 선택만 남았다.


2021. 1월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저항을 그만둘 때, 우리는 상자 밖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위한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상자 밖으로 나오는 길이 바로 우리 앞에 있으며, 먼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상자 밖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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