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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set엄마 Aug 23. 2019

갓 지은 따뜻한 밥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인도네시아로 우리 가족은 이주를 하였다.

14살 사춘기 소녀에게 태어나서 처음 나가보는 다른 나라는 정말 다르고 신기하였다. 우리 가족을 빼고는 내가 못 알아듣는 인니어로 소통하며, 다른 색깔의 피부와 눈동자의 사람들, 한글 대신에  생소한 알파벳으로 둘러싼 간판들, 푹푹 찌고 동남아시아 특유의 형용하기 힘든 냄새와 낯선 음식들.  인도네시아의 첫인상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자리 잡는 동안 고정적인 수입을 위해 부모님은 홀로 인도네시아에 나와있는 한국 주재원들에게 하숙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이 분들과 우리 가족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셨다.  최대한 고국의 맛을 내고, 정갈한 식사를 차려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나는 식사시간이 너무너무 괴로웠다.  한참 먹을 사춘기임에도 불구하고, 밥이 먹기가 고역스러웠다.  특유의 냄새와 찰기 없는 동남아시아 쌀로 지은 밥은 정말 싫었다.  그 쌀로 만든 국수도 나는 쌀 냄새가 난다고 진저리를 쳤다.  식사시간 전에 밀가루 음식으로 를 채우고 식사시간에 참석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으면 최대한 반찬 위주로 식사를 했다. 그래도 내 얼굴에는  “나 이 밥이 정말 싫어” 가 드러났다.  결국 나는 아버지한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나고야 말았다. 어느 순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안남미 밥을 받아들였다.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소박한 반찬이었다.  할머니나 엄마는 식사 때마다 새로 밥을 지으셨다.  가스 불 위에 압력솥을 올리고 얼마 뒤 칙칙폭폭 소리가 나고 또 얼마 뒤 치익하며 김이 빠지면 윤기가 반지르르 도는 새하얀 밥이 완성된다.  철에 따라 완두콩이나 서리태 콩이 올라가기도 하는 밥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은 새하얀 밥이었다.  그 밥에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도 잘 어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 미역국도 함께하면 너무 맛있었고, 겨울에는 잘 익은 총각김치만 있으면 고봉밥도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시간이 흘러 우리 삼 남매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각자의 가정도 꾸렸다.  오랜 시간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시던 부모님도 몇 년 전에 아주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엄마는 여전히  본인 기준에 맞춰 제일 좋은 쌀을 구입하시고, 끼니때마다 새로운 밥을 지으신다.  친정에 갈 때면, 도착 예정시간을 늘 엄마에게 알려드려야 좋아하신다.  그래야 엄마가 시간 맞춰 밥을 새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정 집 문을 열며, “ 엄마, 우리 왔어요!” 할 때면 칙칙폭폭 압력 밥솥이 열심히 밥을 짓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 밥은 왜 이렇게 맛있나요? 하며 밥그릇을 꽤나 잘 비워낸다.


굳이 끼니때마다 새 밥을 지어주시는 엄마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진.  엄마가 내어주시는 갓 지은 따뜻한 밥은 언제나 말이 없는 위로와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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