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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set엄마 May 09. 2020

넌 나의 최고의 축구선수

엄마는 처음이라

얼마 전 첫째의 13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아이가 셋이지만 신기하게도 각각의 다른 감정이 세 아이들에게 느껴진다.  특히 첫째에게만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이 아이의 생일이 되니 더 크게 다가왔다.  아이 성장의 모든 관문을 나 역시 다 처음 겪어보는 터라 첫째 (편의상 1번이라 부르겠다)에게는 늘 서투르고 미숙한 엄마라서 미안하다.

어린 나이에도 1번이라는 이유로 독립적이길 요구하고 동생들보다 더 큰 기대를 지우고,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으니 더 미안하다.


1번은 정말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다.  그 순수함과 해맑음이 때로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마저 나온다.

1번은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이다.  사설 축구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수업을 받고, 방학 때는 특별 훈련도 하고, 작년에는 초등학교 축구 대표팀에 발탁이 되어서 팀이 전국 리그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업적을 이뤄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만큼 기량이 뛰어나지 않다.  그렇다. 나의 1번은 후보선수이다.   사설 축구 클럽이 참가하는 대회나 학교 축구 대표팀에서 출전하는 대회에도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시간보다 더 많은 선수이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기에 대회에 출전할 때는 부모가 따라다니며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지원을 나가야 할 때마다 남편과 나는 늘 두 마음이었다.  

“출전 시간도 짧은데 굳이 가고 싶지 않다” 가 마음속 깊은 속에서 올라오는 원감정이라면

“그래도 부모라도 가서 짧은 시간이라도 뛰는 아이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조금 더 이성적인 생각이다.   

경기 지원 나가는 일은 주말을 고스란히 경기에 헌신해야 하고, 사전에 출전하는 부모님들과 준비물도 서로 협의하여야 하고,  긴 시간 동안 (통상적으로 하루 종일이라도 생각하면 된다) 앉을 틈 없이 내내 서 있어야 하며 경기 중에는 가슴 졸여가며 승부를 지켜봐야 한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하루 종일 밖에 서 있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뒤돌아보게 하였다.  경기에 얼마 뛰지도 못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정말 정말 속상하다. 미묘하면서 내 자존심까지 뭉개지는 복잡한 그 심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를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비며 나래를 펼치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정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아빠가 아이의 지원 도맡기 시작했다.  팀 내에서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머님들보다는 아버님들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작년 여름 사설 클럽 축구 경기가 있어서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마침 1번의 친한 친구 엄마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친구도 같이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고 1번과 친구를 데리고 남편은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그 날이 처음 아빠가 1번을 데리고 간 날이었다.  왠지 모르게 한 번씩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녁때 돌아온 남편은 굉장히 불편해 보였고, 1번은 아빠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였다.

“여보, 식사해요”

“먹고 싶지 않아.  나 차에 다녀올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1번에게 물어보자, 모르겠다고 한다.  

차에서 돌아온 남편은 오늘 경기에 나가서 단 1분도 뛰지 못했다며,  앞으로 이럴 거면 이제 축구 그만 시키자고 하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1번은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나 이제 정말 축구 못해?”

내가 왜 마음이 쿵쾅거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도 심하게 쿵쾅거렸고, 내가 갈 걸 괜히 아빠를 보냈나 싶어서 마음이 너무 쓰렸다.  그날 밤 남편은 팀 감독님과 한참을 통화하더니 여름 방학에 강원도에서 있을 대회에 아이와 함께 가겠다고 하였다.   그 사이, 학교 축구대표팀 경기가 여러 번 치러졌고 팀은 승승장구를 해서 기뻤지만 우리 1번은 여전히 짧은 시간만 뛰는 후보선수라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번의 경기가 있는 날은 시간을 내서 꼭 경기를 관람하였다.  나한테는 여전히 속상하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큰 내색은 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보자고 하였다.  아빠는 하지 못했지만, 나는 1번에게 “너는 계속 후보만 할래?” “ 감독님이 너를 기용하지 않는 이유를 너는 모르겠니” “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는 거니? “ 등등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은 하고야 말았다.  누구보다 경기장을 누비고 싶은 사람은 아이 본인일 테고, 난 그저 내 욕심을 채워주지 못함에,  내 못난 열등감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말았던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고 남편은 1번과 친한 친구 2명을 태우고 3박 4일 동안 클럽 축구대회가 열리는 강원도로 떠났다.  

나랑 2번과 3번은 주말에 고속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남편을 만나서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남편과 1번은 집을 떠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새까맣게 타 있었고 남편은 내가 평상시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팀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모든 궂은 일을 다하고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하며 경기가 열릴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우리 팀 경기가 전반전 중간쯤 진행되고 있었고, 나의 1번은 여전히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1번은 교체 선수로 투입되었고,  이상하리만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1:1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경기에서 패하면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지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숨이 막힐 듯 한 더위와 습기에 선수들은 굉장히 힘들어하였다.  가슴을 조이며, 덥다며 칭얼거리는 2번과 3번을 달래 가며 경기를 지켜보는데 1번이 어시스트를 받아서 바로 골로 연결하였다.  눈을 뜨고 보았지만, 믿기지 않았다.  주장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으며 환호하시는 데, 내가 뭘 본 건지 얼떨떨하며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1번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서 팀은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우리 팀은 결승 진출하여 경기가 TV 중계까지 되었고, 강팀을 상대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였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온 후,  1번은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매일 하루에 2시간 또는 그 이상씩 축구 훈련을 받았다.  더운 여름이라  두꺼운 축구 양말에 축구화를 2시간 이상씩 신고 훈련을 하니 발가락에는 굳은살이, 발바닥에 습진이 생겨서 껍질이 홀라당 벗겨져 버렸다.    




넌 나의 최고의 축구 선수 

2학기가 되어서 학교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계속 치러졌고, 공부만 하는 아이들로만 알려졌던 우리 학교 선수들은 서울시 우승 , 전국대회 리그 우승, 전 경기 무패라는 업적을 남기고 폐단식을 했다.  나의 1번은 후보 선수로 마지막 경기까지 뛰었지만 너무나 행복하였다.  그 사이 참가한 클럽팀 대회에서는 출전할 때마다 한 골 정도는 꾸준히 넣었다.   

1번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잘해서 골을 넣는 건 너무 좋아.  그렇지만 형들이나 친구들이 잘해서 우리 팀이 이기는 것도 난 참 좋아”

내 아이가 팀의 에이스가 되는 것도 참 좋겠다는 야무진 상상을 안 해 본건 아니다.  후보 선수지만 자기보다 잘하는 형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조화롭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 나의 1번이 나는 자랑스럽다.  한 번씩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아빠의 전폭적인 지원에 1번은 더 힘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좋으신 감독님과 정말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팀 동료들을 만난 것이 1번의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며 한 번씩은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즐거운 착각을 하곤 한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종종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고작 이만큼 키워봤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마다 가치관이 틀리기에  이것은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구절이 있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큰 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니,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니다."


엄마 욕심과 기대에 너를 판단해서 미안해. 축구를 좋아하는 너의 순수한 마음을 엄마가 아프게 했어.

누가 뭐래도 넌 나의 최고의 축구선수야.  아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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