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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안내자 옥돌 Mar 04. 2024

오직 너를 위한 생일상

생애 첫 생일상을 차렸다.

10년 지기 친구를 우리집에 초대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나와 같은 영어학원을 다녀서 이름은 몰라도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외고에 진학했고, 1학년 땐 옆반,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2년 간 룸메이트로 조그만 4인실 기숙사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24시간을 함께하며 지난한 입시를 거친 우리 사이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왜인지 그녀를 만나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온다. 이유를 추측하건대, 그녀는 무엇이든 늘 정석대로 열심이었다. 반면 나는 잔꾀가 많아 편하게 성적 잘 받는데 특화되어 있었고, 수능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고도 쉬이 인서울을 했다.

그녀는 재수를 했다. 돌연 세상과 단절한 채 혹독한 공부에 돌입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1년 동안, 묵묵부답인 카톡창에 안부를 묻고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그에 대한 답장은 또 한 번의 수능이 끝나고서야 받을 수 있었다.

힘들게 힘들게 재수를 했건만, 망했단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인데, 노력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는 그녀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반면 나는 들인 노력에 비해 과분한 결과를 종종 맞이하곤 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행복한 결과를 내어주지 않는 건지.


스물넷, 각자의 길에서 방황하던 우리는 각각 호주와 캐나다로 긴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달랐지만 서로의 여행 준비 상황과 현장 소식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안부를 주고받았다.


비슷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 긴 여행이 끝나고서 느끼는 감정도 비슷했다. 여행은 여행이고, 우리는 현실을 살아내야 하니까. 취업 걱정으로 맘 졸이는 그녀와 달리, 나는 원하는 기업에 일찍 취직했다.(현재는 퇴사했다.) 그녀는 취준이 아예 처음이었기에 더 막막했을 것이다.


고향에 내려갔을 때, 친구를 집 앞 카페로 불러냈다. 그녀가 쓴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몇 마디를 건넸다. ‘네 강점은 성실함과 꾸준함인데 컨셉을 도전과 추진력, 잘못 잡은 것 같아.’ ‘이 부분에서 에피소드를 강조해야 네 매력이 잘 보일 것 같아.’ 그 자리서 시작된 자소서 컨설팅은 곧장 노션 포트폴리오 강의로 이어졌고, 다음 컨설팅 일자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몇 차례의 노션 강의와 피드백이 오간 후 그녀의 첫 취업 자소서와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었다. 친구는 네 덕이라며 연신 고마워했지만, 모든 건 그녀가 묵묵히 성실하게 뚝심 있게 살아온 흔적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되는대로, 얼렁뚱땅 해내는 나와 달리 그녀는 항상 철저한 준비와 계획, 노력으로 본인의 길을 걸어왔으니까.


무던한 노력이 빛을 발했던 걸까. 그녀는 첫 지원에 취업을 성공했다. 둘 다 놀랐다. 경험 삼아 넣어보자며 다른 기업도 준비하고 있는데 한방에 철썩 붙어버렸으니 말이다. 드디어, 그녀는 오래도록 지내온 고향을 떠나 상경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2월 28일.

친구가 상경한 날이자 그녀의 생일날이었다.


그녀는 강남 한복판에 쉐어하우스를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그토록 꿈꿔온 서울에 올라오는데 얼마나 설레고, 두렵고, 복잡했을까. 그날 퇴근 후 신촌에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며 우리의 무탈한 서울 살이를 기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회사에서 우직하게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다.)


서울에 고향 친구가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것도 고등학생 시절 함께 ’살았던‘ 친구 말이다. 우리는 종종 만나서 무료한 주말에 한강 따릉이를 타거나, 빵지순례(새로운 빵집 탐방)를 하며 학생 때처럼 시간을 보내곤 했다.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내게 해 준 사람들을 떠올리면 이 친구를 빠뜨릴 수가 없다.


극심한 우울에 시달릴 때도 친구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세상의 의욕을 다 잃어버린 듯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게, 그녀는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내어주고 옆에 있어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자고 했으며, 커피 한 잔과 빵을 대접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또, 허구헌 날 한강에 가자고 말해주었다.


2024년 2월 28일.

엊그제는 사랑하는 10년 지기의 생일날이었다.


쉐어하우스를 전전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우리집'이 생겼으니 그녀를 초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꼭 빈손으로 오라고 당부하며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야심 찬 발걸음으로 망원시장에 가서 야채와 과일,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왔다. 음식 좀 해볼까 했더니 미역을 안 사 왔다. 집 앞 편의점에서 딱 한 개 남은 미역을 쟁여와 뚝딱뚝딱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 끓여보는 미역국, 어설픈 바지락 손질, 누군가를 위해 생일상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 서투름투성이었지만 촉박한 시간 동안 바삐 손발을 움직이며 한상을 차려냈다. 생일 케이크를 사는 대신, 베이글 장금이인 친구를 위해 베이글과 딸기, 크림치즈로 케이크 모양새를 냈다.


생일상을 처음 준비해 보는 이에게 친구로부터 생일상차림을 처음 받아본 이. 10년이나 만났지만 서로의 애정을 표현하는 데는 여전히 서툴다. 그래서 정성 들인 음식과 정성 들여 올리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나마 마음을 전해본다.


이번 주는 혼자 있고 싶었건만,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어쩌면 괜찮다. 집이 떠나가랴 깔깔대다가도 서로의 침묵과 휴식을 이해해 주며 오롯한 시간을 보낸다. 집에 갈 때도 10년 지기는 남다르다. 영상 제작할 때 쓰라며 유쾌한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서준다.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부터 함께하는 순간, 그녀를 보낸 후에도 하루종일 누군가를 위해 쏟은 정성에 덩달아 행복해졌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 어린왕자, 생텍쥐베리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한 방황을 쓰는

고유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written by. 옥돌

옥돌의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okdol_yoga



사랑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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