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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진주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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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Nov 29. 2024

알로하 나의 엄마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두번 읽었어요. 두번 다 북클럽 모임에서 읽은 책이에요. 작년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힘들정도로 꾸준하게 읽히는 책이었어요. 



북클럽 모임을 하기 전 책을 쓴 계기와 책을 쓰는 과정에 대한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게 되었는데 오랜시간 정성을 기울려 쓰인 책은 역시나 다르구나 했답니다. 



처음 읽을 땐 소설 배경과 환경이 기억에 남았다면 두번 읽은 후에는 인물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어요. 사진신부 관련한 유튜브 영상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진 신부였던 할머니 손자가 할머니의 서사를 기록하는 장면을 통해 사건에 가리워지는 인물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줬답니다. 


역사에는 사건도 있지만 분명 그 사건에 중심은 인물이니깐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들이 나옵니다. 버들,홍주,송화 세 명의 여자들이요. 그들이 사진 신부가 되기 전 그들의 위치와 사진 신부가 된 이후 그들의 처지는 서로 다른 시작일지언정 결국에는 사진 신부로 하와이라는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홍주는 잘못도 없이 한 순간에
피 묻은 자수보 같은 팔자가 된 것이다 




인생이 피 묻은 자수보처럼 된 홍주에게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버들은 여자 운명이 고작 자수보 같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여자 인생을 자수보에 비유하며 피 묻은 자수보보다 새하얀 자신이 낫다 자부하기도 하는 버들이지만 여자운명이 자수보 같다 말하는 버들은 결국 여자로써의 어쩔 수 없는 위치를 스스로 한탄하게 여깁니다.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조금 다를지언정 버들이나 홍화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의 뜻과 방법으로 일구어 냅니다. 



사진 신부가 되지 않았다면 그저 남이 그려준 자수보에 불과 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에서의 삶은 주체적 인물로써 자신의 자수보에 직접 수 놓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나고 자란 땅을 떠나 하와이로 가기로 했던 당찬 다짐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여자의 생에 있어서 기점이 되는 것이 주체적 인간으로써의 태도와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자로써 이러해야 한다는 풍조와 억압 속에서 여자로써 누릴 수 있는 행복이나 삶이 주제적인 의지가 아닌 여자를 속박하는 부모나 남편에 의해 조건지어졌다면 세 인물은 하와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남편들의 존재 확인 후 무너진 희망을 다시금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계기가 됩니다.



의지할 무엇이 없다는 건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이 앞으로 밀고 나갈 그 시대 그 여성에게 억척이 되었을 겁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기에는 자신의 처지를 두번 비운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현실적으로 돌아갈 당장의 돈도 없고 말입니다. 



주체적 인간으로 태어나 주체적 부모나 환경에 의해 키워진 여자들은 특히나 그 주체성이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여성의 주체는 오롯이 혼자일 때 자신의 주체성 내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떠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을 만나 새 삶을 꾸리길 바랬던 사진 신부에게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맡기기에 자신들 남편의 존재는 미약했습니다. 다만 버들의 남편인 태완은 주체적 인물로써 자신의 삶을 개척하긴 하지만 대의를 중시하는 그 시절 남자답게 가정에 대한 책임은 버들에게 넘깁니다. 




버들이 그동안 태완에게 갈구했던 건 이런거였다 
좋은 것, 나쁜 것, 슬픈 것 모두 터놓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


그 시절 이미 버들은 시대를 앞선 남성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 신부를 자처하기도 했을 겁니다. 하와이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꿈을 꾸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대의을 우선시하는 태완에서 기대할 것은 그 어느것 하나 없이 그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 버들입니다. 



어무이 말이라면 죽는 시늉하는 효녀로 살았습니다. 
우짜면 어무이한테서 도망치고 싶어가,
그런 집 떠나가 지 행복 찾을라꼬 여를 선택한 긴지 모릅니다.
당신이 아니라 포와 말입더.


혼자가 아닌 셋이 함께였기에 버들,홍주,송화는 주체적 삶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자신의 삶을 구원할 혹은 행복의 나래가 될 남편의 존재가 무너지고 억눌렸을 때 그들은 비로써 자신으로써의 삶을 일구게 됩니다. 



세 여자의 딸인 마지막 등장 인물 진주는 세 엄마의 다양한 주체성을 물려받아 주체적 인물로써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에 보입니다. 아마도 세 엄마의 염원이 담긴 결과라고 할까요?



여자로 살아가지만 여자로써의 주체성에 대한 부분은 살아갈수록 양가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누군가에 구속되어 구원을 바라기도 하고 그 구원의 주체가 부모나 남편 혹은 그 누군가 아닌 자신이 자신의 구원자가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구원자로 나서진 못합니다. 구원자라 여긴 것들이 무너진 후에야 자신에게로 손을 뻗게 됩니다.



주체적 인간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자만이 주체적 인간으로써 자신의 삶을 자신답게 일구어 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살던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하와이라는 이국땅으로의 환경 변화는 버들, 홍주, 송화에게 축복이었지도 모릅니다. 자기로써 살기 위한 첫 발판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주어진 환경과 역사적 사건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서사를 더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갖춰진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환경적 요소가 부족한 시대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어떠한 조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체는 그 생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와이라는 생경한 이국 땅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고 자식을 키워낸 버들, 홍주. 송화가 그저 대견하기만 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아마도 이금이 작가님은 우리 청소년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생을 아름답게 꾸려나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청소년과 함께 이 소설 나눠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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