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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수니 Jan 23. 2021

집을 산 다음날 희망퇴직을 통보받았다.

이제는 나 자신이 곧 양극화. 남은 건 분열뿐인가.

하루 차이로 나는 무급휴직자에서 퇴사 예정자가 되어 버렸고, 그 사이 처음으로 집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 집이다. 현재 우리 집과 부모님 집은 서울의 양 끝에 있다. 당분간 우리는 지금 사는 동네에 있을 계획이라 부모님께서 움직이시게 되었다. 부모님의 현금흐름을 고려해서 매수할 집을 알아보긴 했지만 혹시 돈이 필요할 시에는 나의 현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집을 가계약 했을때까지는. 다음날 여기저기에서 희망퇴직 통보 소식이 들렸다. 갑작스러웠다. (아니 주말인데?) 이런 상황이 오리란 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할 줄 몰랐다. 갑자기 내 노동소득 가능성이 제로 퍼센트로 사라진다 생각하니 마음이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무급휴직이었던지라 소득이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달라지는것 중 하나로 건강 보험료가 있다. 현재 우리 모두 백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남편까지 나에게 자동 흡수되어 있다. 건강보험료가 앞으로는 꼬박꼬박 나갈 예정이다. 이렇게 소속감이 없다는 것은 예상보다 큰 상실감과 동시에 현실적인 부담감을 바로 느끼게 해 주었다. 



하루만 일찍 희망퇴직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집을 살 수 있었을까?

부모님의 노후가 될 집이다. 실질적으로는 내가 거의 다 알아보고 진행했기 때문에 결정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무겁다. (물론 아무도 날 탓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지만) 희망퇴직을 알기 하루 전날 지금 당장 계약해야 한다며 의기양양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집 지금 사야 한다고. 나는 강력 매수를 권했다. 우리는 12월부터 집을 보러 다녔는데 이렇다 할 결론을 못 내리고 있었다. 내 집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보니 부모님이 원하는 집에 대해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과 직접 보고 느끼면서 의견을 좁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집이 좋을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떤 집이 싫을지를 고민했으면 더 좋았겠다란 생각이 든다. 약 2주 사이에 집값이 몇천은 우습게 올랐다. 그래서 빠른 결단이 오히려 돈을 아끼는 길이라 여겼고 망설이는 엄마 아빠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였다. 마침 우리가 원했던 동이었고 12월에 세입자가 집을 안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었는데 마침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것이 괜찮아 보였다. 그랬는데!

하루만에 나의 노동 소득이 원헌드레드 퍼센트 사라진다 생각하니 자신만만했던 마음에 공포의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희망퇴직을 알게 된 지금 나의 마음을 미루어 보아 절대 부모님 집이더라도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될지 악수가 될지는 당장 올 봄만 돼도 알게 되겠지. 제발 울고 있지는 않길 바란다. 오늘부터 난 기도를 할 것이다. 모든 신들께 상투만은 아니게 해 달라고.


내가 분열 되어 가고 있는것 같다.

지금 한국은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밖을 볼 필요가 없다. 내가 양극화 되어가고 있으니. 어제는 몇억 하는 집을 질렀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하루아침에 퇴사 예정자가 되어 버렸고 점심 즈음엔 주식계좌에 빨간불을 보면서 안도하고 (사실 종목 하나가 상한가 가서 심지어 미소까지 지었다) 저녁 즈음에는 모든 걱정과 불안을 끌어안고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극과 극을 오가면서 내 정신도 심하게 위아래로 치솟았다 내리꽂았다. 하루 속 모든 모습이 내 모습인데 하나같이 다 달랐다. 부캐라고 해야 하나 분열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니 이게 현실인지 가상세계인지 싶을 만큼 요상해서 웃음이 났다. 집을 잘 산 걸까란 불안감과 나 앞으로 모 먹고살지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몇 년째 오지 않는 아기. 이 정도면 거의 멘탈 from 분열 to 소멸 3 콤보 아닌가. 거기다 나 이제 36살인데. 억지로 밥 잘 먹고 글도 쓰는 나를 칭찬한다. 올해 분열되지만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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