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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수니 Jan 26. 2021

아파트를 신고가에 매수하고 깨달은
한 가지

부린이에게 한가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상투잡기인걸까?

잘 산 걸까?


결제 영수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사실 잘못사도 쿠폰 하나 차이고 몇천 원에서 몇만 원 정도이다. 그 정도 차이라면 잘못사도 괜찮아하면서 금방 잊어버릴 수 있다. 저 질문 앞에 '집'이란 주어를 넣으면 느낌이 어떨까? 


집, 잘 산 걸까? 

 의. 식. 주.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3가지 요소가 아니던가. 몇천만원에서 억까지도 차이가 생기는 것이 바로 집이다. 절대 못 사면 안 되는 게 되어 버린다. 특히 나처럼 부모님 집을 대신 골라드리는 입장이라면 말이다.



나는 부린이 중에 부린이다. 가계약금을 보내기로 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집을 결정했다는 사실에 기쁘기만 했다. 한데 막상 큰 액수의 가계약금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손끝부터 돈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족한 확신은 의심으로 채워졌다. 우선 내가 날 믿을 수가 있어야지.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한데 나는 경험치 순도 0의 부린이니깐.

이번만큼은 절대 아니길 바랬지만 어김없이 호구 인증을 했다. 쇼핑할 때 언제 기분이 좋은가? 바로 싸게 샀을 때다. 반대로 언제 안 좋은가? 단돈 몇백원이라도 내가 비싸게 샀을때. 내가 정말 모에 홀렸었나 싶었던 게 실거래가를 안 봤다. 하하하하하. 심지어 가계약금을 보내고 나서야 실거래가를 보았다.


띵동. 호구님~ 

신고가에 매수하셨습니다. ^^

(엄마 아빠는 제발 모르시길)



나는 왜 실거래가를 안 보았을까?

솔직히 나도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한두 푼짜리 사는 것도 아닌데 실거래가를 안 봤다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니 몇 가지 원인이 있었다. 


1. 비이성적인 상태였다. 

1월 안으로 집을 매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처음으로 1월에 집을 보러 가자마자 더 미루지 말자고 시점을 정해놓았다.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부린이인 주제에 무슨 대단한 분석이 있었겠는가. 그냥 결단을 내려야 될 것 같았다. 그 마음 밑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에게 최악은 이사조차 못하는 것이다. 


2. 가격이 상승세에 있다고 생각했다.

12월에 집을 봤을 때보다 3천만 원 정도 올라가 있었다. 무서운 사실은 내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에 말이다. 가계약금을 보내고 다시 지난 임장 때 봤던 집들의 가격을 체크해보니 해당 매물들은 동일하거나 천만 원 정도 올라갔다. 매물마다 특성이 있다 보니 최저가와 최고가의 차이가 벌어졌었던 것 같은데 그걸 평균적으로 모든 집들이 그만큼 올라가버렸다고 해석한 것이다. 


3. 호가만 보면서 비교했다.

적어도 내가 집을 본 곳의 시세는 계단식이었다. 예를 들면 다들 약속을 정한 것인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집을 내놓았다. 저층과 고층을 제외하고 거의 가격이 똑같거나 많이 차이 나봐야 1천만 원 정도의 차이였다. 해당 가격대의 매물이 나가면 가격대가 더 올라간다. 어떤 매물은 작년 가을부터 나왔는데 사람들이 볼 때마다 천만 원씩 올렸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호가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른 가격대에 사고 싶어도 그 다른 가격대는 선착순 마감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가격대의 집을 볼 가능성은 극히 적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실 내가 실거래가를 봤더라도 난 이 집을 샀을 것 같다. 왜냐면 그만큼 마음이 쫄려 있었다. 매물은 많았지만 정작 실거주를 할 수 있는 매물이 적었다. 전세 끼고 매수해야 하는 집들이 대다수였고 실거주가 가능한 집은 10% 정도였다. 당연히 실거주 가능한 집은 더 비쌌다. 내가 사막에서 물을 마시고 싶은데 물이 말라가고 있다. 그때부터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을 마실 수 있느냐 없느의 차원으로 가는 것이다. 내 마음이 이랬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조급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이유다. 생존이 걸렸기 때문에. 대단한 팁은 아니지만 일단 실거주할 집을 찾고 있다면 최대한 미리 봐 두는 것이 집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ps. 아직도 나의 희망퇴직은 진행 중이다. 어제는 매매 계약서를 사인하고 오늘은 퇴직서 싸인을 고민 중이다.  신고가에 산 죄를 부모님께 어찌 갚으리오 ㅠㅠ 




+집을 산 다음날 희망퇴직을 통보 받았어요.

양극화의 일상으로 분열될 뻔 했던 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daesooni/38


+ 가계약 했다고 끝이 아니쥬? 

순탄하지 않았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daesooni/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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