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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수니 Jan 29. 2021

가계약 파기하면 어떻게 되죠?

집을 다시 봤더니 없던 문제들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매매계약을 하는 날이 되었다. 매매계약서에 도장 찍어야지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매 계약 전에 집을 한번 더 보고 싶다고 요청을 했는데 갑자기 2일 전에 계약을 먼저 하고 집을 보라는 것이다. 통보였다. 이유는 세입자분이 약속이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출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원래 요청대로 진행해 달라고 했더니 조건이 왔다. 매도자 측 중개사 분과 우리 측 2명 포함해서 총 3명만 보는 걸로.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집을 안 봤으면 어땠을지.


가계약 파기하면 어떻게 되죠?

나와 엄마가 집을 둘러본 후 부동산 중개인분께 물은 첫 번째 질문이었다. 우리는 심각했다. 도대체 이 집 우리가 본 그 집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집 컨디션이 별로였다. 구석에 곰팡이가 있었으며 세입자분께 혹시나 싶어서 결로는 없죠?라고 물어봤더니 계속 있었다고 하셨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결로라니. 다행히 지금 눈으로 봤을 때는 없었지만 아예 지나칠만한 사안이 결코 아니었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라고 했는데 곳곳에 관리가 잘 안되어 있었고 욕실 벽과 바닥에는 누런 찌든 때들이 있었다. 안경을 안 쓰고 집을 보러 간 게 잘못이었나 싶었다. 엄마랑 나랑 두 명이었는데도 왜 제대로 체크가 안되었던 걸까. (부린이라서..)


집 볼 때 알면 좋을 5가지


1. 역시 집은 밝을 때 보는 것

이번에는 3시에 갔는데 이전에는 4시쯤이었다. 1시간 차이지만 일조량 차이가 매우 크게 느껴졌다. 아무리 조명을 다 킨다고 해도 말이다. 벽지에 있는 오염물질이나 생활 흠집 같은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이제 3년 차 아파트라 방심한 마음도 있었나 보다. 실제로는 4~5년차쯤 되어 보여서 속상했다.


2. 집안을 아주 구석구석 보기

사실 가구가 있는 상태에서 집을 면밀히 체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구석 위주로라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 갔을때는 눈에 보이는것 위주로만 봤었다. 이번에는 커튼 뒤와 집 구석구석을 보았더니 세상에 곰팡이가 꽤 심하게 있었다.


3. 매물을 보는 날의 전략

우리는 부모님께서 서울을 가로질러 오셔야 했기 때문에 점심시간 이후부터 스케줄을 잡았다. 시간도 아쉬웠지만 매물 개수와 순서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매물 개수는 개인적으로 2~ 3개가 적당한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매수하고 싶은 집을 정해서 사전에 순서까지 조율하는 것이 좋다.  매수할 집을 염두에 두고 더 집중적으로 봤더라면 집 상태를 더 정확히 봤을 것이다.


4. 세입자분이 산다면 땡큐

세입자분은 할머니 혼자셨는데 소리를 잘 못 들으셨다. 이번에는 할머니의 따님이 계셨다. 그래서 사시기에 어떠셨는지 이런저런걸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나한테는 좀 쓰라린 이야기들이었지만 세입자분들 통해서 찐 정보를 얻기 좋다.


5. 안경이든 렌즈든 눈을 최대한 좋게 해서 간다.

한두푼 아니니깐 이런 노력까지 해야 한다. 나는 용기 있게도 0.5 시력의 맨눈으로 집을 봤네? 그것도 안 밝을때. 그리고 양해를 구하거나 눈치껏 사진을 찍어놓으면 나중에 기억하기에 좋다.


계약을 파기할지 말지 결정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이런 깨달음은 집에 와서 생각해 본 것이고, 당연히 그 당시에는 난리가 아니었다. 일단 우리 측 부동산 중개사분께 계약을 파기하면 가계약금만 못 받는 것이 맞느냐고 확인했다. (매수인이 포기하면 가계약금만, 매도인이 포기하면 2배 배액 배상인데 협의도 가능) 집을 자세히 보니 상태가 엉망이라고 했고 우선은 계약을 할 부동산 앞에서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동하는 5분 동안 차안에서 우리는 회의를 했다. 지금 내 인생을 통틀어 시간 대비 가장 비싼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계약을 파기할 것인지 매도인 측과 이야기를 해 볼 것인지. 엄마는 직접 보셨기 때문에 심란해하셨고, 나 역시 내키지는 않았다. 부동산 중개사분을 만나서 사진으로 찍어온 집 상태를 보여드렸다. 우리가 가장 맘에 걸려했던 3가지를 빠르게 정리했고 도배비를 제안하기로 했다.



1. 구석과 창틀 실리콘에 가득 피어있는 곰팡이

> 환기를 잘 안 시키셔서 생긴 관리의 문제라서 개선이 가능 


2. 화장실에 누렇게 찌든 때 및 벽지에 묻은 때

> 도배 및 청소로 해결 가능


3. 주방 후드의 철망이 녹고 구멍이 뚫림

> 청소 및 교체로 해결 가능


매도자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 우리 측 부동산 소장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집 상태에 대해서 말을 꺼내셨다. 사실 난 속으로 이때 좀  쫄았다. 큰소리가 나거나 계약이 파기 될까봐. 아니나다를까. 처음에는 좀 대립이 있었다. 우리가 과장해서 전달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혹시 집을 보신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 번도 없다고 하셨다. ( 난 사실 집주인이니 집을 한번은 보셨을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특수 입주청소를 지원해 주시기로 했다. 후드의 경우에는 분명히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첩에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파손 시에만 교체를 해 주시기로 했다. ( 나중에 보니 왜 이 사진이 휴지통에 있는거지? ) 초장에 가장 껄끄러운 이야기들이 정리가 되자 그 후부터는 사는 이야기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잘 마무리 되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엄청 마음고생을 시키셨더라. 매도하시는 분들이 지쳐있으셨다.



마지막에 매도자분들이 우리에게 그사이 천만원이 올랐다며 축하드린다고 하셨다. 좋은 물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나는 그 천만원 높은 가격이 호가로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속으로 빌었다. 이제 비싸게 샀든 못난이를 샀든 도장 찍었으니 우리집이다. 오늘 저녁은 푸짐한 족발에 막국수다!

 



+ 요즘 계약파기가 심심치 않다보니 권익위에서 계약을 깬쪽이 수수료도 부담하는걸로 개편되네요

    (단, 계약서 조항에는 추가로 명시하는것이 더 확실하다 합니다)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89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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