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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부 Nov 16. 2021

들여다보아야만 아는 마음이라면

익명의 설문조사로 확인해보는 아이들의 마음  

그 뒤로도 비슷한 사건을 한번 더 겪고 난 뒤로는 현우와의 심리적 거리가 도무지 좁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사고를 치는 아이라면 모를까, 대놓고 벽을 쌓고 ‘내게 다가오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내건 듯한 현우에게 나도 더 이상 다가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 디저트 요거트네 맛있게 먹자.

‘감사합니다~!!!!'

‘우와 맛있겠다. 다른 맛은 없어요?!’

‘쌤 저 하나 더 먹고 싶어요.’

흔한 점심시간 풍경. 학교 안의 구성원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웬만해서는 기분이 좋은 시간. 

점심시간 디저트 후식을 나눠주는 때는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전 됐어요.’

그리고, 뾰족한 마음을 알아차리기에도 최적의 순간이다.

식판에는 반찬도 국도 없이 흰 밥만 덩그러니. 실내화는 신지도 않은 채 검정 후드를 뒤집어쓰고 자리로 가는 아이는 현우였다. 현우는 ‘안 먹어요.’ '됐어요.’만 반복하더니 자리로 들어가 퍼온 밥은 몇 숟가락 뜨지도 않고 버려버린다. 


선생이 이러면 안 되지만 가끔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춘기 특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이라기엔 매일 같이 모나 있는 마음. ‘무슨 일 있니?’라고 물어보아도 ‘아무것도 아녜요.’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며 누가 볼 새라 닫아버리는 마음. 그런 마음은 섣불리 관여하기 망설여진다. 어른도 상처 받고 싶지 않다. 때론 ‘선생님 진짜 궁금한 거 아니잖아요. 그냥 어른이라서, 담임이라서 어쩔 수 없이 물어본 것뿐이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동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무거운 책임감은 느낀다. 이번 연도 유난히 활기찬 아이들 사이에서 늘 홀로 먹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칙칙한 현우가 신경 쓰였다. 나는 개인 상담이나 청소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현우와 이야기를 터보았다. 늘 단답과 무표정으로 일관하긴 했지만, 한 번은 남아서 먼저 말도 걸길래 이제 조금은 친해졌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현우의 담당 1인 1역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나는 현우에게 10분만 일찍 등교해서 같이 준비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현우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음 날 출근시간보다 20분 일찍 교실에 와서 현우를 기다렸다. 그러나, 현우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고 심지어 지각까지 했다. 현우를 기다리는 동안은 현우에게 늦은 걸로 뭐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고 사실 그다지 화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아, 늦잠 잤어요.’ 한 마디와 함께 시선을 피해버리는 현우를 보니 막상 미운 감정이 생겼다. 기억하건대, 그날은 나 역시도 개인적인 문제로 삶이 퍽퍽하고 힘든 날이었다. 아이한테 감정적으로 대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냉정하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현우는 내 눈치를 살짝 살피는 듯하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비슷한 사건을 한번 더 겪고 난 뒤로는 현우와의 심리적 거리가 도무지 좁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사고를 치는 아이라면 모를까, 대놓고 벽을 쌓고 ‘내게 다가오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내건 듯한 현우에게 나도 더 이상 다가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현우를 대하는 것은 점점 쉽지 않았다. 틈틈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말을 걸 때도 현우 자리를 멀리 돌아가게 되고, 디저트를 줄 때도 관심 담은 질문 대신 '맛있게 먹어'라는 의례적인 말만 하게 되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만큼 현우도 나를 불편해하는 거 같았다. 어쩌면 나의 불편한 감정을 현우에게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남은 학기가 흘러갔다. 

방학식날이면 나는 아이들에게 설문조사 링크를 배부하곤 한다. 한 학기 동안의 학교생활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익명으로 받기 위해서이다. 늘 하던 대로 구글 폼으로 양식을 만드는데 이번엔 마지막 질문이 특히 고민되었다. 


‘선생님께 하고 싶은 아무 말을 적어주세요.’ 


마지막 질문은 아이들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도록 서술형 양식을 넣곤 한다. 사실 이 항목은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희들은 대답만 해줘’ 같은 질문이다. 아이들의 귀여운 애정표현도 볼 수 있고 선생님을 너무 싫어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짧은 인사라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난 또 기분 좋게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아이들이 참 예쁘다고 느끼게 되는, 좋은 게 좋은 그런 항목이란 말이다. 


그런데 현우가 신경 쓰였다. 현우는, 그 아이는 내게 할 말이 없을 텐데.. 있어도 좋은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혼자 찔린 나는 질문을 없애버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그래, 모든 피드백은 소중하니까. 

어느덧, 설문조사가 완료된 후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읽었다.. 아이들의 짧고 긴 코멘트들은 2학기에도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게 만드는 예쁜 말들 뿐이었다. 그때 어떤 아이의 코멘트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저 현우예요.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가 버렸네요. 실수도 많이 했는데 봐주셔서 감사해요. 한 학기 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이쁘고 착하신 00 선생님 사랑해요. ♡♥♡♥♡♥♡’


현우가 쓴 말에 놀라움보다 먼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감사와 사랑. 교차하는 하얀 하트와 검정 하트의 행렬은 평소 현우의 부루퉁한 표정과 딱딱한 말투에선 상상할 수 없는 답이었다. 육성으로 읽어보아도 현우가 직접 썼을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코멘트였다. 익명인데도 불구하고 애써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을 보니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현우의 의지가 느껴졌다. 


추측컨대, 현우는 나에 대한 마음을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음껏 애정을 표현하는 몇몇 아이들과 달리 현우는 그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을 뿐인 것이다. 뒤집어쓴 검정 후드와 무미건조한 말투로 현우를 미뤄 짐작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내 인생도 건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현우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다양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 안다. 하나의 저울로 측정하기도, 한 마디 말로 형용하기도 어려운 마음. 프리즘에 이리저리 비추어보아야만 비로소 다채롭게 빛을 낼 마음들. 어른인 내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들여다보아야만 아는 마음을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채 하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기엔 내 마음 하나 건사하기 급급해서, 오해를 풀어보려는 노력도 못한 채 스쳐 지나갈 수두룩한 인연이 많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나의 감정 소모와 비용 대비 돌아봐야 하는 마음이 주는 효용이 적기 때문에. 


그런데 말이다. 설문조사에 아무 말이나 쓸 수 있는 빈칸을 만들어두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원평가도 따로 있는데 굳이 익명 설문조사까지 받아서 악플을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늘 뺄까 말까 고민하던 익명란이다. 물론 현우가 익명으로 ‘쌤 진짜 싫어요. 빨리 일 년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네요.’라고 적었어도 달게 받았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상처 받을 용기 덕에 평생 몰랐을지도 모르는 현우의 마음을 클라우드에 고이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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