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무심하기 짝이 없던 3월 첫 번째 주가 떠오른다. 발령받은 학교는 어마어마한 교육열로 유명한 학군지의 중심 학교. 맡은 업무는 48학급이라는 대형학교의 수업계. 모든 것이 낯선 때, ‘선생님’이라는 어색한 명분을 달고 들어가는 인생 첫 수업, 삐걱이는 교실 문을 열고 교단에 성큼성큼 들어가 서기까지의 몇 초가 얼마나 떨리던지. 무표정한 아이들 앞에서 등에 땀이 흥건하도록 긴장하여 횡설수설, 일장 연설을 하고 나왔다. 에듀파인 사용법도 모르는데 4단 결재를 어떻게 올리란 것일까. 결재판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종이를 달랑 들고 결재를 받으며 한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빨리 친해질 수 있을까 웃게 할 수 있을까, 퇴근 후에도 쉬지 않고 연구하고 고민했다. 임시시간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불평에 상처를 받고, 교단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에 자괴감이 들어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고단했던 첫 주의 금요일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울컥하여 바라본 창가의 시린 풍경까지 생생할 정도이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첫 차시 수업은 떨리기도 하고,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때로 무겁지만, 그보다 더 자주, 수업하며 즐겁고 행복하다. 7년 전 출근길 버스에서 산더미 같은 걱정과 불안을 안고 억지로 내딛던 발을 떠올리면 지금의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고 산뜻할 수 없다. 나를 싫어하나 싶을 정도로 무표정이던 아이들은 실은 새로운 학급, 새로운 선생님 앞에서 꽁꽁 얼어있던 것 뿐이고 모든 걸 아는 베테랑처럼 보이던 선생님들도 첫 해 첫 수업만큼은 늘 긴장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빼고 다 잘하는 듯 보이던 발령 동기들도 알고 보니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고군분투 중이었다.
선생님들께서 처음 겪을 한 해는 이보다 훨씬 편안할 수도 혹은 상상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교사의 한 해는, 어떤 반을 맡고, 어떤 수업을 맡고, 어떤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맡아 어떤 선생님들과 일하는지에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 만큼은 첫해가 가장 힘든 해였고 한 해 한 해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은 수업하며 신이 나고 다음 수업이 기대되기도 한다. 심지어 마치고 나오며 ‘오늘 나 자신, 참 멋졌어’라며 심취해볼 때도 있다. 필자의 글은 어설픈 새내기 교사가 아이들과 학교를 내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수업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붙였는지, 어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바닥이던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는지의 경험담이자 현재진행형 분투기이다.
PLLT, TBP, TG… 임용시험을 위해 두꺼운 원서를 읽고 수업 시연에서는 명연기를 펼쳤으면 무엇하나. 열정만 넘치는 새내기 교사의 수업은 그야말로 우당탕탕. 좋아 보이는 거, 좋은 거, 좋아해 주는 거를 마구잡이로 섞어 넣은 짬뽕 수업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에 약간의 지루함만 스쳐도 죄책감이 들던 시절이라 매일 같이 게임과 활동적인 수업을 준비하다 보니 진이 빠졌다. 선생님이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강사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된 거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란 고민과 함께 ‘이게 맞나?’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 중학교 활동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수업 형식과 자료는 무궁무진하다. 블로그와 카페 검색, 구글링만 해도 가공만 거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도래한 대 에듀테크 시대는 어떤 면에서는 영어 수업 준비를 더 쉽게 만들었다. 퀴지즈, 카훗, 띵커벨, 패들렛 등 게이미피케이션의 접목과 디지털 교육의 전환으로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뚝딱 수업 준비가 끝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상 수업에 꾸준히 사용하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실로 손에 꼽는다. 남들이 좋다고 해도 막상 내가 써보니 별로인 경우도 있고, 별거 아닌 플랫폼도 교육적 효과가 뛰어난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좋은 수업이란 결국 선생님과 가장 잘 맞고 재미있는 수업이란 것이다. 무조건 활동 수업이라고 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신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추구하는 수업 목적과 방향에 맞고, 선생님이 신나서 하는 수업이라면, 결국 아이들도 재미있게 참여하기 마련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신나 하는 수업에서는 선생님도 덩달아 신이 난다. 수업이란 교사와 학생의 행복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완성하는 무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몇 번의 에피소드에 걸쳐 중학교 수업의 주요 차시인 단어, 문법, 읽기, 말하기&듣기의 4영역에서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수업 형식과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매해 더하고 빼며 수정을 거듭하는 유동적인 고민의 기록이기에 ‘누군가는 이런 수업을 하는구나’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 지면 한계상 하나하나를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 원고는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계간 [서울교육] 특별판에 집필한 필자의 원고를 사진과 자료를 포함하여 보다 자세히 서술한 수업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