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중학교 단어, 뭘 가르쳐야돼?
various, donate, rubber.. 중학교 3학년 lesson 1의 목표 어휘들이다. 처음 단어 수업을 준비하며 참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단어는 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라떼는 단어란 그저 달달 외우고 못 외우면 못 외운 갯수만큼 발바닥을 맞아야 하는 회초리 매개변수였을 뿐인데. 뭘 어떻게 재밌게 가르친담. 사실 7년을 가르치며 살았지만 재밌게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수업 설문조사에서 재밌게 수업해주세요, 라는 말만큼 부담스러운 부탁이 없다. 내게도. 화려한 언변과 타고난 재치가 있으면 좋으련만. 헌데 그런 수업을 하는 선생들이 강의를 해주신다고 한들, 따라할 수 있을까?
미안해 애들아, 선생님은 노잼 인간인걸.
그렇다면 재밌게 가르치는 건 둘째치고 재밌게 열어라도 보자.
필자가 단어 수업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해당 과의 목표어휘 중 핵심 단어를 선정하는 일이다. 핵심 단어는 다른 단어를 포괄하는 단어일 수도, 쓰임상 중요한 단어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래엔 5과 본문 내용은 심리학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인데, 목표 어휘 중 심리학을 의미하는 ‘psychology’가 있다. 접사의 존재가 확실한 단어를 만나면 오랜 친구처럼 반가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접사 ‘psych’만 가지고도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단어 수업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psych’의 어원이 정신적 사랑을 상징하는 프시케(psyche)이며 ‘psy’로 시작하는 여러 영단어들을 언급하며 ‘psy’가 ‘마음’, ‘정신’을 의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다. ‘자 단어 공부하자’라며 빽빽한 단어 리스트를 나눠주는 일이 기본값이지만 때론 스토리텔링으로 수업을 열며 재미있는 이야기꾼을 자청해보는 것이다. 물론 선생님의 패턴에 익숙해진 눈치 빠른 똑똑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에 속지 않는다. ‘또 오늘 공부랑 관련된 거죠! 안 속아요!’ 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그래도 귀를 쫑긋하며 들어는 준다.
의외로 고전인 행맨도 인기가 많다. 모두가 알 법하지만 중요한 단어, 스펠링 실수가 많은 단어를 하나 골라 행맨을 시작하며 수업을 열 수 있다. 전자칠판의 상용화 덕에 단어의 뜻을 아냐는 질문에는 입을 꾹 닫던 아이들도, 교탁에 나와 죽어가는 행맨을 실감 나게 그려달라 하면 손을 번쩍 든다. 그림 그리기가 지겨워지면 다양한 행맨 사이트를 이용할 수도 있다. 몇 번의 돌려막기로 한 학기 수업 열기 정도는 거뜬히 해결이 가능하다.
출처: 필자가 애용하는 flippity 사이트의 snowman과 https://www.hangmanwords.com/create
정성 들여 준비한 수업 열기보다 간단한 행맨이 반응이 더 좋은 걸 보면 고전에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가성비 수업 준비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개 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어 수업 형식은 이곳에 다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다. 주 활동 및 플랫폼으로는 워드월(wordwall), 단어로또, 클래스카드, 빙고, 픽셔너리(pictionary) 만들기(패들렛 플랫폼 사용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단어 라임을 이용한 가사 만들기 등이 있다. 모두 약간의 가공만 거치면 되는 간단한 활동이기에 한 번씩 적용해보는 것을 권한다. 여러 가지 활동을 고루 경험한 뒤에 선생님만의 틀을 만들고, 선호하는 활동을 그때그때 짜깁기 한다면 단어 수업 준비야말로 어느새 식은 죽 먹기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단어 뜻을 줄 때는 되도록 빈칸보다는 ‘초성’으로 주는 편이다. 빈칸으로 주었을 때 보다 훨씬 대답도 잘하고 참여율도 높다. 수업을 닫을 때는 중요했던 단어 4-5개 정도를 강조해주고, 다음 차시를 열며 배운 단어를 테스트하곤 한다. 수업의 열고 닫는 형태에 익숙해지면 어느덧 아이들이 먼저 오늘은 단어로또 안해요? 시험 보죠? 라고 물어오기도 한다.
초성을 활용한 단어 뜻 제시의 예 출처: 미래엔 3과 수업 자료 변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