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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부 Jan 24. 2024

선생님의 새해는 3월부터

선생님들의 새해는 3월부터 시작한다. 

학기의 시작과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교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아이들. 설렘으로 반짝거리기도, 두려움으로 움츠려있기도 한 얼굴들. 거울을 보는 듯한 그 면면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실감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1, 2월은 조금 더 특별한 때이다.

새것을 맞기 위하여 기존의 것들을 흘려보내야 하는 시기이니 말이다.  

새 학교에 오고 이년 간 정이 든 아이들이 졸업을 한다. 대개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면 시원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이번 해는 유난히 섭섭한 마음만 컸다. 담임이 아닌 채로 수업에서만 마주한 아이들이기 때문일까. 우리 반 아이들보다 남의 반 아이들의 실수에 관대하던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생님들도 떠나는 해이다. 교직원 회의 시간, 정년퇴임을 맞으시는 선생님께서 모두에게 퇴임 인사를 하셨다. 수학 선생님이신데,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으로 수업을 장악할 뿐 아니라 늘 연구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는 멋진 분이다. 학교 현장에서 모두가 우물쭈물할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목소리 높여 말해주시기도 하던 참 어른이셨다. 그분께서 퇴임인사를 하시며 당신의 연로한 아버님께서도 딸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신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치시는데 나도 그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연세가 지긋하신 선생님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어린 딸이구나,를 생각하니 괜히 코가 시큼거렸다.   


퇴임 인사를 마친 선생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나누며 안아주셨다. 어느새 내게 다가오신 선생님께서 나를 꼭 안으며 따뜻하게 등을 쓸어주었다. 사실 그 분과는 같은 학년을 해본 적도, 같은 부서를 맡아본 적도 없지만 어쩐지 내게도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분이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듯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울컥해서가 아니고, 쑥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인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한 번도 같은 부서를 해본 적이 없는 이런 맘이어도 되는지, 혼자 생각하느라 그랬다. 결국 '선생님 건강하세요'라는 말만 바보 같이 웅얼웅얼거린 것이 다이다.   


그날 점심시간, 아이들이 동아리 시간에 만든 작품을 돌려주기 위해 교실로 향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아 있을 리 없다. 텅 빈 교실에 남은 학생은 두어 명 정도. 반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단 주로 혼자 책을 읽거나 사색하는 아이들이다. 수업시간에도 말이 없어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얘들아 00이 자리가 어디야?'

'저기 창가 자리에 물병 있는 곳이요.'


책상에 작품을 올려놓기 위해 묻자, 한 아이가 읽던 책 너머로 나를 스윽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쩐지 어색한 기운이 감돌아 얼른 작품을 올려놓고 반을 나서려 할 때였다.


'선생님!!!'

책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다급히 외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교실을 나서려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 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에, 그 아이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려 90도로 꾸벅 내게 인사했다.


놀란 나머지, 순간 아이의 이름도 까먹고, 

'어어.. 고마워..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으렴' 하며 교실을 나섰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외침, 생각지도 못한 감사인사였습니다. 

그 아이가 내게 건넨 말 중 가장 긴 문장이기도 하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감사 인사였다. 

그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졸업사진을 찍는 날, 마법사 분장을 하고 온 아이의 지팡이가 부러졌길래, 테이프를 주며 붙여 보라고 했다. 어린아이 손목처럼 두꺼운 지팡이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봐도 잘 붙지 않았다. 너덜거리는 지팡이를 보며 우리 둘 다 그만 웃음이 터졌다. 아이는 내게 테이프를 돌려주며 감사하다고 했고 나는 아이에게 사진 잘 찍으라고 했던 거 같다. 

그 외에는 수업시간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 아니오 정도만 하던 아이다. 


정년퇴임을 하시는 선생님께서 나를 꼭 안아주실 때, 마음속에서 맴돌던 말이 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정말 존경합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하지 못한 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도 아닌데 너무 질척이는 건 아닐까. 

뭘 안다고 존경한다고 하면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뭐 대충 그런 한심한 생각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 아이가 나가는 나를 부르고 감사하다고 전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짐작이 간다. '나는 쌤과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대답도 잘 안 하던 애인데'.. 아마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러서, 꾸벅 감사인사를 전해준 그 아이 덕에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감사함을 전하는 것도 미안하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33년 차 어른인데도, 그런 말이 종종 부끄럽고, 민망하고, 낯 간지럽다. 

딱 반만큼만, 내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만 살아온 아이가 먼저 내준 용기 덕에 나는 참 감사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전한 감사함보다 두 배가 넘게 고마운 하루였다. 


 2024년 새해, 아직은 '시작'과는 조금 멀게 느껴지는 1월. 시리게 춥기도 봄날 햇살처럼 따뜻하기도 한 1월의 바다. 출렁이는 여러 고민들 속에서 결심 비스무리한 것은 해본다.

너무 늦지 않게 고맙다고 말할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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