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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20. 2020

차이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

왕가위, <아비정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제목으로는 참 익숙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몰랐던 홍콩 영화 <아비정전>을 봤다. 1990년에 만들어진 1960년대 배경의 영화를, 1990년생이 2020년에 봐도 '힙하다'라고 느끼게 되니, 명작은 명작인 것 같다. 최근 읽은 책에서 "새로운 것보다 훌륭한 것을 선택하라"라고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2. 

영화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 주인공 아비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4명의 청년에 아비의 양어머니 정도가 주요 인물인데 때로 전개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난다. 결말도 뭔가 엉성하고, 맨 마지막에 양조위가 나오는 장면은 생뚱맞기 그지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홍콩 영화가 전성기를 달릴 때의 최고 배우들이 출연해서 그런지, 배우들의 얼굴과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장국영을 보면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남자란 저런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부스스한 머리의 사진만 보다가 청초함이 물씬 느껴지는 20대 중반의 장만옥을 보니 괜히 중화권 최고 여배우가 된 게 아니구나, 싶었다.  


3. 

영화 속 청춘 남녀들은 아비를 중심으로 5각 관계를 형성한다. 아비를 사랑하는 두 여자, 그리고 그 여자들을 각자 사랑하는 두 남자. 아비는 결혼은커녕 본인이 누군가를 사랑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독신주의 자유 남자이다. 자유 남자가 아니라 나쁜 남자-라고 썼다가, 결혼한 상대도 아닌데 마음이 변했다고 나쁘다고 할 수 있는가? 싶어서 바꿨다. 아비는 양다리를 걸친 적도 없다. 그냥 자기 마음 가는 대로 갔다가, 떠날 뿐이다. 

  그런 아비에게 그나마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요소도, 아비 역시 자신이 가장 원하는 상대에게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어머니도, 양어머니도 아비가 갈구하는 사랑을 주지 않는다. 또한 아비 때문에 괴로워하는 두 여자들 역시, 자신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두 남자를 돌아보지 않는다. 두 남자 역시 누군가에게 그럴지도 모른다. 누가 나쁘고 누가 불쌍한지, 큰 그림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4.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떤 형태의 마음을 주고받을 때 그 마음이 동등한 경우는 거의 없다. 동등은커녕, 비슷하기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마음의 차이가 클수록, 더 좋아하는 쪽은 괴롭다. 그렇지만 더 좋아하는 쪽을 꼭 불쌍한 쪽일까?

  아비를 좋아하는 두 여자는 각자 아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주지 않는 아비 때문에 괴로워한다. 한 여자는 결혼을 원했고, 한 여자는 자신만을 사랑하길 바랐다. 아비는 여자들에게 딱히 뭔가를 원하지 않았다. 굳이 원한 게 있다면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 자유였다. 

  많은 경우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상처 받는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하는 '성숙한 사랑'의 개념을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 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을 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어떤 울림을 받는 것 아닐까. 


5.

30대가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차이나는 마음을 가진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어렵다. 사랑뿐 아니라 우정에 대해서도 그렇다. 나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는 방법에 여러 번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고 있다. 


나는 너를 이렇게 많이 생각하고, 먼저 연락하는데. 
너는 나한테 닿으려는 노력을 1도 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밉다.
나한테 큰일이 생겨도 내가 알리지 않으면 너는 모르겠지.
그게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복수가 될 수 있을까. 
그마저도 나는 확신할 수 없다.


6.

요새 마음이 번잡할 때마다 읽는 책 <오직 모를 뿐>에서 숭산 대선사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중생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나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라는 것. 

"나는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생각을 놓아 버리십시오. 만일 '나-나의-나를'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좌선을 한다면, 당신은 영원토록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의 '나-나의-나를'이라는 마음을 사라지게 하면, 이미 당신은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 <오직 모를 뿐>, 25페이지


 7. 

아,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도, 에리히 프롬의 성숙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2020.10.20, 김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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