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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Nov 01. 2024

택배상자

부푼 기대를 안고 택배상자를 뜯어서 옷을 꺼냈다. 몸을 쑤셔 넣어 봤지만 옷은 내게 맞지 않다. 속상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체중이 모든 옷을 마다한다. 휴... 한숨 한 번으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쁘게 옷을 재포장했다. 그리고 쇼핑몰에 반품 접수를 했다.




아침은 언제나 바쁘다. 아침의 시간은 두 배 속으로 흐른다. 나는 바쁘게 가족의 아침을 챙기고 출근 준비를 했다. 가방을 챙기고 꼼꼼히 화장을 하고 급하게 신발을 신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는데, 띵똥 문자가 온다.


[금일 반품 수거 예정입니다. 택배상자를 문 앞에 내놔주세요.]


헉, 깜빡했다. 엘리베이터는 B1을 가리킨다. 나는 다시 15를 눌렀다. 급하게 뛰어 들어가 반품 택배상자에 크게 CJ 문영이라고 썼다. 내가 왜 그렇게 썼는지는 모르겠다. 별 생각이 없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던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택배 기사님이었다. 문 앞에 택배상자가 없단다.


  "문 밖에 분명히 내놨었는데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 제가 반품이라고 쓰지는 않았고 문영이라고 썼어요."

  "문 앞에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그럴 리가요? 00 아파트 1500호 맞아요?"

  "네, 맞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이상하네요."

  "내일 다시 방문할게요. 찾아보세요."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혹시 출근하면서 문 앞에 반품 택배 못 봤어?]

  [응, 없었어.]

  [못 봤어?]

  [응]


이상하다. 그냥 출근한 날이라면 내가 혹시 깜빡 잊고 안 내놨나 할 수 있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기까지 해서 상자를 내놨다. 없을 리가 없다. 그 상자는 어디 갔단 말인가.


앞집 사람 이름도 문영인가? 그래서 들고 들어갔나? 아니면 앞집도 반품이 있어서 앞집 택배 기사가 가져갔나? 너무 급하게 내놨어서 완전 구석에 뒀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궁금증을 뒤로하고 업무에 회의까지 마치고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문 앞에 새로 온 택배상자만 있다. 이번엔 내 화장품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택배상자 송장 옆에 내 이름이 크게 매직으로 쓰여 있다. 왜 00도 아니고 이름을 저렇게 다 썼나. 이상한 일 투성이다. 눈 씻고 찾아봐도 내 반품 택배상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그렇게 찾던 반품 택배상자가 떡하니 있다.


  "응? 이게 왜 여깄어?"

  "뭐가?"

  "이 택배"

  "아 그거, 꿍이가 학교 가려고 나갔다가 엄마 택배 왔다고 들여다 놨어. 어젯밤 늦게 왔나 봐."

  "이거 반품하려고 내놓은 건데... 아까 없다며?"

  "그거였어? 반품이라고 써 놨어야지. 문영이잖아."

  "아... 그렇지."


어쨌든 택배상자를 찾아서 다행이다. 뒤늦게 아들이 자기가 택배 들여다 놨다고 생색다. 그건 반품이었지만 아무튼 고맙다고 했다.


  "응? 엄마 이름만 있었는데?"

  "응, 엄마가 잘못 썼네."


나는 반품 택배상자를 다시 들고 왔다. 내가 써 놓은 이름 옆에 '반품'이라고 크게 써서 내놓을 심산이었다. 새로 온 화장품 택배상자는 그냥 현관에 두었다.




다음 날, 출근하면서 반품 택배상자를 문 앞에 내놨다. 이제는 아무도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퇴근했더니 어제 왔던 화장품 택배 상자가 문 앞에 있다. 그리고 반품 택배상자는 사라졌고 잘 가져갔다는 송장이 있었다.


  '이건 또 왜 여기 있지? 어제 내가 안 챙겼나? 아닌데, 아침에 현관에 있었는데.'


갸우뚱하며 택배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면서,


  "네가 반품 택배 안 내놨길래 내가 내놔줬어. 잘했지?"

  "오, 그랬구나. 고마워."


이제 상황이 다 이해됐다. 내가 이름을 크게 써 놨다고 했으니 남편은 내 이름이 크게 쓰여 있는 택배상자가 반품 택배인 줄 알았던 것이다.




예전에 봤던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부잣집 아저씨가 이웃의 가난뱅이가 만날 웃는 얼굴인 이유를 궁금해했다. 자기는 부유해도 행복하지 않은데 저치는 가진 게 없으면서도 뭐가 저렇게 좋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부자는 짤뚝한 바지를 입은 가난뱅이에게 바지가 그렇게 짧은 이유를 물었다.

  "아 제가 아내에게 바지를 2cm만 줄여달라고 했는데 같이 있던 애도 들었어요. 나중에 엄마가 줄인 걸 모르고 자기가 줄였다고 하더라고요?"

가난뱅이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하하하 웃었다. 부자도 바지를 사다가 가족 모두가 듣는 데서 길이를 줄여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바지는 며칠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부자는 자기는 불행하고 그 가난뱅이가 행복한 이유를 깨닫고 그를 부러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도 문득 행복을 느끼며 피로가 사라졌다. 몸이 불어 옷이 지 않아도, 새벽부터 동동거려도, 챙겨주는 가족이 있다. 위하는 마음이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도 아이와 남편과 함께 식탁에 둘러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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