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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우리를 위하여

3장. 인어공주 - 목소리를 잃은 희망

by 유혜성

3장. 인어공주 - 목소리를 잃은 희망


인어공주 동작을 하다가


필라테스 수업 중, 나는 종종 머메이드(Mermaid) 동작을 한다.

몸을 옆으로 길게 늘이고, 한쪽으로 천천히 기울이는 자세.

언뜻 단순한 옆구리 스트레칭 같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진짜 인어공주가 되는 순간이구나.”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고,

오직 한쪽으로만 나아가는 그 자세 속에서

나는 바위 위에 앉아있는 인어공주가 된다.

꼬리를 잃고도 마음의 방향을 잃지 않았던 그 소녀처럼.


그래서 이 동작은 내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해도 여전히 살아 있는 희망’을 느끼는 의식이 되었다.

몸의 자유는 잠시 멈추지만, 마음은 그 고요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어느 날, 한 회원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인어공주 동작을 하면 이상하게 슬퍼요.

사랑을 선택하고 결국 물거품이 되잖아요.”


그 말에 오래 잊고 있던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인어공주는, 사실 절반의 기억이었다는 걸.


많은 이들이 디즈니의 붉은 머리 소녀를 떠올린다.

노래하고, 사랑을 얻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

그러나 그건 우리가 바라던 결말일 뿐이다.

원작의 인어공주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인어공주의 세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1837)와 디즈니 애니메이션(1989).


원작의 인어공주는 이름이 없다.

그녀는 인간 왕자를 사랑해 바다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고 다리를 얻는다.

그 대가로 육지에서 걷는 매 순간,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저주까지 받았지만,

그녀는 끝내 왕자를 살리고 자신은 거품이 된다.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순수한 마음 덕분에 ‘공기의 딸들’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비극 같지만, 어쩌면 그것은 희생을 통해 완성된 초월의 이야기다.


반면 디즈니의 인어공주 (1989)의 주인공은 이름이 있다.

에리얼(Ariel).

밝고 호기심 많은 바다의 공주로, 인간 세상을 동경한다.

왕자 에릭(Prince Eric)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바다 마녀 우르술라(Ursula)와 거래해 목소리를 내어주고 다리를 얻는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그녀 곁을 지켜주는 존재들이 있다.

노란 줄무늬 물고기 플라운더(Flounder) - 겁이 많지만 끝까지 함께하는 친구.

빨간 가재 세바스찬(Sebastian) - 잔소리꾼이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보호자.

그리고 욕망의 그림자 우르술라(Ursula) -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잃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존재.


디즈니 속 에리얼은 결국 사랑을 얻었지만,

그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해피엔딩에 닿기까지,

그녀는 수많은 두려움과 선택의 고통을 통과해야 했다.


목소리를 잃는 순간,

에리얼은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사랑은 누군가를 향하는 일인 동시에,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 이야기는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영혼의 각성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 머메이드 자세를 할 때마다 생각한다.

움직임은 멈췄지만, 그 안에서 균형이 피어난다.

목소리를 잃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진짜 노래가 시작된다.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불완전함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작은 인어공주들의 이야기다.


철부지의 용기 - 목소리를 잃은 희망


어쩌면 인어공주는 철부지였을지도 모른다.

바닷속에서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사랑받는 공주였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전혀 다른 세상, 다른 공기, 다른 종족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잊고 사는 순수한 용기가 있다.


그녀는 사랑 하나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걸었다.

목소리, 가족, 정체성, 자신이 속한 세계까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희생이 슬프기만 한 건 아니다.

그만큼 사랑이란,

‘나’를 버려야 비로소 ‘너’를 만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어공주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플라운더를 사랑한다.


많은 사람들은 에리얼의 붉은 머리와 노래를 기억하지만,

나는 언제나 곁에서 함께 떨고 숨 쉬던 작은 물고기,

플라운더를 떠올린다.


그는 작고 여린 존재였지만, 끝까지 에리얼 곁을 지켰다.

“하지 마!” 대신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라고 말할 줄 아는 존재였다.


플라운더는 우리 인생의 ‘조용한 증인’ 같은 친구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진 않지만,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을 견디게 해 준다.

그는 말보다 침묵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물살을 건널 용기를 얻는다.


세바스찬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잔소리와 걱정, 현실감각 속에 숨은 따뜻함.

누군가는 우리를 앞에서 밀고,

누군가는 옆에서 지키고,

누군가는 뒤에서 “괜찮아, 네 길이야.”라고 말해준다.

에리얼의 곁엔 그런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주저앉은 나를 대신해

“괜찮아, 거기서 잠깐 쉬어도 돼.”

라고 말해 준 친구,

겁이 나서 한 발 물러선 나를

“그래도 네가 옳았어.”라며 믿어 준 사람.

그들의 존재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의 인생에도

한 번쯤은 그런 플라운더와 세바스찬이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더라도,

그들의 한마디와 시선은 여전히

우리 안 어딘가에 남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고 있다.


어쩌면 오늘 당신 곁에도

그런 이가 있을 것이다.

말없이 함께 걷는 사람,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여주는 사람.

그가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를 잃은 희망


에리얼은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줬다.

겉으로는 잃은 것 같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이 자라났다.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전했고,

노래하지 않아도 마음을 들려줬다.


희망은 꼭 소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눈빛으로, 행동으로, 기다림으로

조용히 살아남는다.

그게 바로 ‘목소리를 잃은 희망’이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

그래도 묵묵히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야 하는 시간.

그때의 침묵이 오히려 우리를 앞으로 이끈다.

소리 내지 않아도, 희망은 그렇게 자란다.


그것이 바로,

불완전한 우리를 위한 희망의 얼굴이다.


사랑의 또 다른 얼굴 - 에리얼의 선택과 인간의 서정


원작의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자신을 초월한 순간이었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녀는 다시 목소리를 되찾고,

바다와 육지 -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두 이야기의 결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진실을 말한다.


“사랑이란, 잃어야 얻는 것이다.”


에리얼은 목소리를 잃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진짜 마음의 언어를 배웠다.

자신을 내려놓았기에, 사랑이 머무를 자리가 생겼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내어줌의 연습이다.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쥘 때는 닫히고,

내가 조금 비워낼 때 관계는 흐른다.


잃는다는 건 사라짐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와 연결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잃음의 모양으로 다가오는 선물이다.

함께 나누는 작은 질문


• 당신은 사랑을 위해 무엇을 잃어본 적이 있나요?

• 그 잃음 속에서 다시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 당신 곁에는 플라운더나 세바스찬처럼 묵묵히 지켜준 이가 있었나요?


짧은 고백이라도 좋아요.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숨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한 줄 메모

“목소리를 잃는 순간, 마음은 더 크게 울린다. 희망은 언제나 침묵의 틈에서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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