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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우리를 위하여

9장 겨울왕국의 올라프 - 사라짐을 사랑하는 용기

by 유혜성

9장 겨울왕국의 올라프 - 사라짐을 사랑하는 용기


너라면, 어디까지 사랑하겠니?


우리는 과연, 사라질 걸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걸 알면서도,

그 따뜻함을 향해 웃으며 걸어갈 수 있을까.


올라프는 그런 아이였다.

눈으로 태어나 여름을 꿈꾸고,

소멸의 운명을 알면서도 햇살을 동경하던,

세상에서 가장 무모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낭만주의자.


그의 순수함엔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다.

계산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끌리는 대로 품을 줄 아는 용기.

그건 어쩌면 우리 안에 아직도 조용히 살아 있는,

한때는 모든 걸 믿고 사랑했던 ‘작은 나’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늦가을의 끝, 겨울이 문 앞까지 다가온 지금,

나는 문득 그 아이를 떠올린다.

햇살을 향해 녹아내리던 웃음,

그 순수한 용기의 이름, 올라프.

1. 눈의 파편이 자매의 이야기로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여정


겨울왕국(Frozen, 2013)의 뿌리는 안데르센의 고전 동화 <눈의 여왕>이다.

그 이야기에서 소년 카이는 눈의 여왕에게 붙잡혀 차가운 세계에 갇히고,

소녀 겔다는 사랑으로 그를 찾아 나선다.

그 여정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사랑’에 대한 오래된 은유였다.


디즈니는 그 차가운 고전을 부드럽게 녹였다.

눈의 여왕을 ‘악역’이 아닌 ‘상처 입은 자매’로,

이야기의 중심을 ‘구원’이 아닌 ‘관계와 연결’로 옮겨놓았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가 바로 엘사와 안나의 서사였다.


엘사는 태어날 때부터 눈과 얼음을 다루는 힘을 지녔다.

하지만 그 힘은 축복이자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어린 시절, 장난 삼아 마법을 쓰다 동생 안나를 다치게 한 기억이

그녀의 마음을 깊게 얼려버렸다.

그날 이후 엘사는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았다.

사람들을 다치게 할까 봐, 사랑을 잃을까 봐,

스스로를 고립의 성 안에 가두었다.


그 고독의 끝에서 엘사는 도망치듯 북쪽 산으로 향한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아무도 닿을 수 없게.

그곳에서 마침내 마음껏 마법을 펼치며 얼음의 궁전을 세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립의 순간에

가장 따뜻한 생명이 태어난다.


바로 올라프였다.

그는 안나와 엘사가 어릴 적 함께 만들던 눈사람이었다.

사랑과 웃음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흔적이,

엘사의 마법 속에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올라프는 단순한 눈사람이 아니다.

그는 엘사의 잊힌 온기이자,

자매의 기억 속에 얼어붙은 순수한 시간의 결정체다.

엘사의 내면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따뜻함이

형태를 얻어 세상에 나온 존재.


그래서 올라프는 엘사에게는 무의식의 따뜻함,

안나에게는 잃어버린 언니의 사랑,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관계의 희망을 상징한다.


그가 웃을 때마다,

얼어붙은 관계는 조금씩 녹아내린다.

올라프가 없었다면,

자매의 대화는 끝내 얼음처럼 굳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눈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랑으로 살아가는 아이였다.


2. 여름을 사랑한 눈사람 - 존재할 수 없는 계절을 꿈꾸다


올라프는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 제 할 일을 할 때도, 나는 여름 햇살 아래 쉬는 나를 꿈꿔요.”

(Winter’s a good time to stay in and cuddle / But put me in summer and I’ll be a—happy snowman!)


그의 말은 들을수록 사랑스럽다.

눈사람에게 여름은 사라짐의 계절, 생의 끝이다.

하지만 올라프는 그 여름을 향해 눈을 반짝인다.

자신이 녹을지도 모르는 계절을 동경한다는 것, 그건 얼마나 순진하고, 얼마나 용감한 일일까.


그는 세상의 이치보다 마음의 방향을 믿는 아이였다.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드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 걸 알면서도,

그 따뜻함을 꿈꾸고 싶어 했다.

그의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기적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었다.


올라프를 보고 있으면,

눈이라는 가장 순수한 재료가 얼마나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어린 자아,

세상의 규칙을 배우기 전, 사랑에 이유를 묻지 않던 그 시절의 우리다.

우리는 어른이 되며 현실을 배우고, 상처를 피하는 법을 배웠지만

올라프는 끝내 그 순수를 잃지 않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이 말은 귀엽고 짧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진심이 숨어 있다.

‘내가 사라질지라도, 그 사람을 위해 녹을 수 있다면 괜찮다.’

그는 사랑이란 결국 소멸을 감수하는 선택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올라프는 단지 아이들이 웃는 동안 잠시 등장하는 눈사람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내면의 순수함,

세상에 지치기 전의 무모한 낭만 그 자체다.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몸으로 보여주는 존재였다.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뜻함을 선택하는 용기.


그리고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누구도 올라프를 미워할 수 없다.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 안에는

우리 마음속 깊이 묻어둔 첫사랑의 여운,

그때의 믿음, 그때의 순수가 여전히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눈으로 만들어졌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였다.

3. 엘사, 안나, 그리고 올라프 - 나와 닮은 세 가지 얼굴


나는 처음엔 안나가 좋았다.

언니를 찾아 눈보라 속으로 뛰어드는 그 단단한 발걸음,

낙천적이고 따뜻한 그 마음이 나는 부러웠다.

언제나 먼저 다가가고, 믿음을 잃지 않고,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아마도 내 안의 결핍이 그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거겠지.


안나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자아다.

용기 있고, 따뜻하며, 두려워도 움직이는 사람.

상처보다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하지만 현실 속 우리는,

그렇게 투명하게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다.

상처를 덮기 위해 웃고,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밝게 굴며,

사랑보다 먼저 생존을 생각할 때가 많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나는 사실, 엘사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그녀처럼 나에게도 힘이 있었다.

그 힘은 눈보라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

책임감으로 자신을 다잡는 의지,

그리고 타인을 살피는 조용한 온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 힘을 다루는 법을 몰랐다.

내 안의 온기가 방향을 잃으면

누군가에게 차가운 바람이 될까 봐,

그 가능성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 침묵을 택했고,

표현 대신 거리를 두었으며,

닫힌 문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결코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내 안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시기를

조용히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엘사의 고독은 힘의 대가였다.

누군가를 지키려다 결국 자신까지 얼려버린,

그 냉정한 사랑의 방식.

그걸 이해하는 순간, 나는 엘사를 동경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품고 싶었다.

그 안의 두려움을, 그 안의 따뜻함을.


그 차가운 내면 한가운데, 나는 올라프를 발견했다.

엘사의 마법 속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언니가 잃어버린 웃음과 순수였다.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세상의 질서에 맞추느라 꾹 눌러둔 순수함,

어른의 얼굴 뒤에 숨겨둔 아이의 따뜻함.

그건 여전히 내 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눈송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올라프는 엘사의 또 다른 자아이자,

우리 안의 숨은 온도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여름을 꿈꾸는 마음.

사라질 걸 알면서도 따뜻함을 동경하는 낭만.

그건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안나를 동경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엘사 속의 올라프,

즉, 나 자신 안의 따뜻함을 껴안고 싶다.

그건 완벽함이 아니라 인정의 순간이다.

내 안의 차가움과 따뜻함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

그게 진짜 성숙이고, 어쩌면 사랑의 다른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안나처럼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진 못하지만,

엘사처럼 스스로를 지키려 애쓰고,

올라프처럼 여전히 웃으려 한다.

그게 불완전하지만 진짜인 나의 모습이다.


우린 누구나 그 셋을 품고 산다.

차가운 힘의 얼굴(엘사),

따뜻한 믿음의 얼굴(안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사람 하나(올라프).

세상은 어쩌면 그 셋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4. 올라프의 회복탄력성 - 불완전함 속에서 웃는 힘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단순히 다시 일어서는 힘이 아니다.

상처를 딛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회복탄력성의 힘>(앤드루 샤테, 카렌 라바이 공저)에 따르면,

진짜 회복탄력성이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올라프는 바로 그 힘을 보여준다.

그는 눈사람으로서 세상의 덧없음을 안다.

겨울이 지나면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덧없음 속에서도, 그는 웃는다.

그의 웃음은 단순한 낙천이 아니라, 의식적인 다정함이다.

세상이 변해도, 계절이 바뀌어도,

그는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하고, 포옹을 말한다.


그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과 닮아 있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 속에서도,

잠시 멈춰 웃을 수 있는 마음.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여전히 따뜻함을 택하는 선택.

그건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작은 용기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언젠가 지나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회복의 힘이 아닐까.


5. <겨울왕국 2> - 질문이 깊어질수록 사랑은 성숙해진다


<겨울왕국 2>에서 올라프는 더 이상 단순한 조연이 아니다.

그는 이야기의 리듬을 이끄는 철학자이자 해설자로 성장한다.

유난히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가장 단순한 말로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진다.


“왜 모든 건 변할까

왜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을까?”


그의 질문은 아이의 호기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어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건 불안과 사랑, 소멸과 수용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든 이의 물음이다.


눈사람은 녹기 위해 태어난다.

그의 시간은 짧지만, 그 짧음이 존재의 전부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그는 질문한다.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존재의 끝을 향해서도 꿈꾸는 용기이자,

모든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택하겠다는 선언이다.


엘사는 자신의 힘의 근원을 찾아 마법의 숲으로 들어가고,

안나는 언니 없이 세상에 남아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랑을 지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올라프는 두 사람의 불안을 웃음으로 녹인다.

그는 늘 그렇듯, 가벼운 농담 속에 인생의 온기를 담는다.


“모든 건 변하더라. 그래서 더 사랑하게 돼.”


그건 포기가 아니라,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의 말이다.

변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있었다.


<겨울왕국 2> 속 올라프는 더 이상 엘사의 마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스스로의 철학을 갖고,

세계의 유한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존재로 자란다.

그의 질문은 슬프지만, 동시에 따뜻하다.

왜냐하면 그 끝에서 그는 늘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아요.

변해도, 사라져도,

지금 이 순간이 사랑이니까요.”


올라프는 우리에게 말없이 알려준다.

사랑은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껴안는 일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의 순수는 바보 같을 만큼 낭만적이지만,

그 안엔 어른이 미처 닿지 못한 지혜가 숨어 있다.


계절은 돌고, 눈은 녹고,

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오래 남는다.

모든 것이 변해도, 그 말만큼은

사랑처럼, 끝내 녹지 않는다.

6. 함께 나누는 작은 질문


오늘 당신 안의 올라프는 어디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나요?

그 아이가 꿈꾸는 ‘여름’은 무엇인가요?


한 줄 메모

“사랑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안에 여운을 남기는 일이다.

그렇게 남은 여운이,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


작가의 말


나는 올라프를 사랑한다.

그는 단순히 웃음을 주는 눈사람이 아니라,

사라짐을 알면서도 따뜻함을 선택하는 존재였다.

무모할 만큼 순수한 그 용기가

우리가 잊고 지낸 진심의 숨결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엘사의 차가움, 안나의 용기, 그리고 올라프의 다정함

그 셋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가 홀로 서면,

모두 조금씩 불완전하다.

그건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서로의 모난 부분이 부딪히고, 때로는 상처를 내면서도

결국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다시 사랑을 배운다.


겨울이 문 앞까지 와도 괜찮다.

오늘의 온기를 놓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살아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모든 것은 녹아 사라져도,

진심은 어딘가에 남아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덥힌다.


그게 바로 올라프의 마지막 미소였다.

눈사람의 입가에 남은 그 미묘한 온기,

그건 끝이 아니라,

다음 계절로 건너가는 온기의 징표였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사랑스러운 존재들에게,

바로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위하여.

쉬어가는 페이지 - 올라프 명대사


1. “나는 따뜻한 포옹을 좋아해.”

Hi, I’m Olaf, and I like warm hugs.

가까워지는 일이 때로 두렵지만, 결국 우리를 살리는 건 포옹의 온기다.


2. “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사랑은 나를 녹이지만,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의 따뜻함이 스며든다.


3. “겨울이 제 역할을 할 때도, 나는 여름 햇살 아래 쉬는 나를 꿈꿔요.”

Winter’s a good time to stay in and cuddle / But put me in summer and I’ll be a - happy snowman!

존재할 수 없는 계절을 향한 동경, 슬프지만 아름다운 꿈이다.


4. “모든 건 변하더라. 그래서 더 사랑하게 돼.”

Everything changes, and that’s why I love it even more.

변하지 않는 건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 사랑해야 한다.



참고문헌 및 자료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눈의 여왕(The Snow Queen)』

•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Frozen(2013), Frozen II(2019)

• 앤드루 샤테·카렌 라바이 공저, 『회복탄력성의 힘(The Resilience Factor)』, 김미정 옮김, 북하우스, 2014

• 디즈니 공식 가사집 〈In Summer〉

• Frozen Script (2013) 영화 대사집

• 디즈니 인터뷰 - 조시 게드(올라프 성우) 인터뷰 발췌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https://www.threads.com/@comet_you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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