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모, 싸이월드에서 친구 찾기 해본 적 있어?”
조카가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심한 척 툭 던지듯 물었다.
그 질문 하나가 화면 위에 잠깐 떠 있다가,
내 오래된 과거 쪽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해봤지. 친구 찾기도 했고… 날 찾은 사람도 있었고.”
“그럼 이모는 누구 찾았어?”
“있었지. 진짜 궁금했던 사람 한 명.”
조카는 소파 등받이에 턱을 괴고
내 얼굴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어떤 사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랑 같은 아이디를 쓰던 사람.”
“같은 아이디?”
“응. Carpe Diem. 카르페디엠.”
조카가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본다.
“카르… 페디엠? 그게 무슨 뜻이야? 별명 같아.”
나는 오래전, 종이쪽지 위에 흐릿하게 적혀 있던
로마자 철자를 함께 떠올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뜻이야. 라틴어로.”
“오… 멋있네. 어디서 나온 말이야?”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누군가 오래된 필름을 돌리는 것처럼,
한 장면이 마음속에서 또렷하게 떠올랐다.
“우리 학창 시절에 아주 유명한 영화가 있었거든.
〈죽은 시인의 사회〉.”
“아, 그거! 책상 올라가는 그 장면!”
조카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맞아, 그 장면.”
나는 조용히 웃으면서
90년대 교실의 공기, 먼지 냄새,
철제 책상의 차갑게 떨리던 감촉을
다시 내 이야기 안으로 천천히 끌어들였다.
1990년대의 교실은
늘 흐린 형광등 아래에 있었다.
깍두기 단발 아래로 교복 깃은 언제나 빳빳했고,
책상 위에는
수학의 정석, 성문 기본 영어, 문학 전집,
그리고 내가 늘 끼고 다니던,
몸집보다 더 커 보이던 두꺼운 책,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포개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만큼 과한 조숙함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나만의 ‘멋’이라고 굳게 믿었다.
문학소녀들 틈에서
나는 조금 과하게 진지했고,
늘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던
조용한 모범생형 반항아에 가까웠다.
“왜 이걸 외워야 해?”
“왜 이 방식으로만 살아야 하지?”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내 머릿속은 늘 그런 질문들로 웅웅거렸다.
그 시절 학교는 참 단단하고 차가웠다.
입시, 규율, 체벌, 침묵.
그 네 가지가 우리의 사계절을 대신했다.
그해, 새로 부임한 담임은 스물넷.
우리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젊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의 젊음은
우리를 이해하는 온기가 아니라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타오르는
분노와 통제의 에너지에 가까웠다.
아침 조회 시간,
그날 담임의 표정과 목소리 톤에 따라
우리의 하루가 갈렸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사소한 복장 검사에서부터 이유 없는 단체 기합까지,
교실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우리는 모두 예민했고,
그의 히스테리는 거의 폭력에 가까웠다.
“언젠가는 무언가 터지겠구나.”
그런 예감만 교실 천장 밑에 둥둥 떠다니던 시절.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한 편이 우리 학교에
조용하지만 깊은 균열을 냈다.
〈죽은 시인의 사회〉.
극장 안은 미지근한 팝콘 냄새와
사춘기들의 심장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이
아이들 앞에 서서 말했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그리고 학생들이 하나둘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장면.
그 장면에서
내 심장도 조용히 책상 위로 올라갔다.
저건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연출이 아니라,
우리가 숨을 쉬고 싶어 하던 방식이라는 걸
그때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누구도 “재밌었다” 같은 평범한 감상을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우리에게도… 저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어느 아침,
담임은 또 이해할 수 없는 지적을 시작했다.
아무도 틀린 답을 쓰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벌을 서야 했고,
아무도 지각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엎드려뻗쳐를 했다.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기분, 그의 히스테리였다.
그는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자신의 분노를 쏟아낼 대상처럼 다뤘다.
참다못한 몇몇 친구들이
교무실로 내려가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늘 비슷했다.
“너희가 좀 참아라.”
그 선생님이 이사장과 연관된 사람이라는 소문,
우리보다 어른들 사정이 더 복잡하다는 눈빛,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에 붙는 말.
“그냥… 지나가라.”
그날 쉬는 시간,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도… 해볼래?”
“뭐를?”
“그거. 캡틴.”
나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처럼 느껴졌다.
조용한 모범생이었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친구들을 살살, 그러나 끝까지 움직이는 스타일.
그런 내가, 그날만큼은
그 일을 멈추지 않게 붙들고 있었다.
종례가 끝난 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교실에 남았다.
누구도 “이제 하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어떤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아주 작은 소리도 내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책상 위로 올라갔다.
누군가는 손을 떨었고,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긴장 속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같은 문장을 읽고 있었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증명.
담임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한동안 말을 잊은 사람처럼 문간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곧 고함을 질렀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난리가 났고,
우리는 운동장으로 끌려 나가
똑같은 자세로 기압을 받았다.
그래도 한 명도 울지 않았다.
한 명도 변명하지 않았다.
한 명도 고개를 숙이고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
우리는 교감실로 다시 불려 갔다.
교감 선생님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선생님… 너희도 참 불편하지?
근데, 어떻게 하겠니. 조금만 더 참아라.”
결국 담임에게 공식적인 경고가 내려졌고,
생활기록부에 이상한 기록이 남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날,
우리 모두가 아주 조금씩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순수했기에 가능한 반항이었고,
너무 젊었기에 가능한 혁명이었다.
우리는 그때 몰랐다.
우리가 책상 위에서 증명하려 했던 것이
사실 단 하나였다는 걸.
“나도 살아 있다.”
90년대의 교실은 여전히 답답했지만
그날만큼은
창문이 조금 더 크게 열린 것 같았다.
우리에게 그 교실은,
잠깐이나마 완성형에 가까운
첫 번째 ‘교실 이데아’였다.
그 영화에는
이상하게 눈길을 끌어당기는 한 청년이 있었다.
에단 호크(Ethan Hawke).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찍을 때
그는 스무 살 무렵이었다.
소년도 아니고,
완전한 어른도 아닌,
딱 그 중간 어디쯤.
사춘기 끝자락과 청년의 초입이 부딪히는 얼굴.
낯가리는 듯한 눈빛,
말을 끝맺지 못해 삼켜버리는 문장들,
칠판 앞에 서면 입술이 바짝 마르는 스타일.
말수는 적지만
속으로는 세계 전체가 요동치는 학생의 얼굴이었다.
그 불안함이…
왠지 우리와 너무 닮아 있었다.
몇 년이 흘러,
우리가 대학생이 되었을 즈음
그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비엔나의 밤거리 한가운데에서.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
국내에는 1996년 무렵 들어온 영화였다.
유럽 기차 안,
우연히 자리를 마주한 두 사람,
에단 호크(제시 역)와 줄리 델피(Julie Delpy, 셀린 역).
둘은 서로의 나라, 언어, 미래도 모른 채
그저 “오늘 밤만 같이 걸을래?”라는 질문 하나로
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비엔나의 골목,
새벽의 공원,
다뉴브강 근처 벤치.
지금 보면 별것 아닐 대사들인데,
그때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흔들어 놓았던 문장들.
“이 밤이 그냥 지나가 버리면 어떡하지?”
“그래도, 지금은 우리 거잖아.”
대단한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걷고, 이야기하고,
가장 솔직한 자기 자신을 보여줄 뿐.
하지만 그 하룻밤은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언젠가 나도
이런 밤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한다는 말도, 사랑이라는 말도 없이
낯선 도시에서 마음이 툭,
연결되는 순간.
그건 누군가를 “꼭 사귀겠다”는 계산이 아니라,
청춘에게 한 번쯤 주어졌으면 하는
하룻밤짜리 ‘비포 선라이즈’ 같은 장면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죽은 시인의 사회〉와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자라던 그 무렵,
에단 호크는 현실에서 자기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1996년, 그는 첫 장편 소설
<The Hottest State>(더 핫티스트 스테이트)를 발표했다.
나중에 이 소설은
그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0대엔 불안한 학생,
20대엔 밤새 철학하는 여행자,
그리고 영화 밖에서는 소설을 쓰는 작가.
그러니까 에단 호크의 이름은
그저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성장 서사와
묘하게 겹쳐 흐르는 연대기였는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때 그는 우리였다.
대학생 때도 그는 우리였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그가 9년 뒤 다시 셀린을 만나러 올 때,
우리도 각자의 도시에서
누군가를 다시 떠올릴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도 성장했다.
그 영화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서전 한 장이었다.
IMF가 터지기 직전, 97년 여름.
우리는 셋이서 백팩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배낭여행이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런던에 유학 가 있던 친구 집에 며칠 얹혀살다가,
셋이 같이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넘어왔다.
어느 도시를 가든 우리의 원칙은 하나였다.
“숙소는 싸게, 기억은 진하게.”
유스호스텔 3인실.
삐걱거리는 2층 침대와 공동 샤워실,
한 사람이 드라이기를 잡으면
나머지 둘은 그 옆에서 수건을 뒤집어쓰고
간이 화장을 하던 그런 밤들.
파리는 생각보다 더 어지러웠다.
지하철 노선은 복잡했고,
발음하기 어려운 역 이름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들렸다.
어디든 예뻤지만,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도시.
그날도 우리는
각자 보고 싶은 곳이 달라 잠시 흩어졌다가,
저녁에 한 지하철역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문제는,
우리가 파리 지하철에 너무 서툴렀다는 거였다.
나는 노선을 잘못 갈아타고,
내리려고 일어선 순간 문이 너무 빨리 닫혀버려
플랫폼에는 친구 둘이 남고,
나 혼자 덜컥 지하철에 실려 나가 버렸다.
지도는 손에 있었지만
이 열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객차 유리창 밖으로는
낯선 역 이름들이 음악처럼 스쳐 지나갔다.
간신히 내린 역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만나기로 한 역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입안에서 굴려보는 프랑스어 발음은
어쩐지 다 틀린 것 같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가던 순간.
그때였다.
“Excuse me… 혹시 길 찾는 거, 도와드릴까요?”
낯선 억양이 섞인 영어.
고개를 들자, 그가 서 있었다.
“… 한국 분이세요?”
우리는 곧 한국어로 말을 바꿨다.
그는 파리 여기저기를 떠돌며 글을 쓴다는,
어딘가 보헤미안 같은 사람이었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과는 정반대의 결.
어딘가에 정착하기보다는
도시를 배경 삼아 부유하는 자유로운 영혼.
머리는 묶은 듯 풀린 듯 어정쩡하게 길었고,
가방에는 카메라와 노트가 몇 권씩 꽂혀 있었다.
어디 하나 번듯하게 다듬어진 곳은 없는데,
이상하게 전체가 어울리는 사람.
“길을 좀… 잃었어요.”
내 말에 그는 잠깐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파리가 초행길한테 좀 불친절하죠.
친구들이랑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요?”
나는 서툰 발음으로 역 이름을 말했다.
그는 “아, 거기요.” 하고 웃으며
지하철 노선도를 짚어 설명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냥 가리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같이 타고 가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센강 근처 역에서 갈아타고,
지하철에서 내려 에펠탑이 멀리 보이는 다리 위를 잠깐 걸었다.
“여기 조명 예뻐요. 밤 되면 더 좋아요.”
“저 카페는… 혼자 글 쓰기 좋고요.”
그는 파리를 ‘가이드’처럼 설명하기보다
오래 사랑해 온 도시를
살짝 자랑하는 사람처럼 소개했다.
나는 열심히 메모를 하는 척했지만,
사실 더 또렷이 남은 건
그의 말투와 속도, 그리고 눈빛이었다.
약속 장소로 정한 역 근처 광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친구 둘이 먼저 와 있는 게 보였다.
헤어지기 직전,
그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그냥… 암호 같은 거예요.”
그가 웃었다.
“나중에 이 여름이 생각나면
‘Carpe Diem’이라는 글자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그게… 제 이름 같은 거니까.”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
설마 이걸 다시 떠올릴 일이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 거지?
물어보면 될 것을,
입술까지 올라간 질문은 끝내 목을 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종이를 반으로, 다시 반으로 접으면서도
어느 쪽도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접어 넣었다.
그때, 멀리서 친구들이 달려왔다.
“야, 어디 갔었어? 진짜 걱정했잖아!”
“우리 파리에서 너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길 좀 잃었어.
근데 어떤 사람이 도와줬어.”
정말로 있었던 일만 말했는데,
손안에 쥔 쪽지 때문에
내 목소리만 조금 더 뜨겁게 들렸다.
그날 밤,
우리는 셋이 한 방에서 뒤엉켜 자면서도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파리 지하철 객차 안,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이름 모를 역들,
센강 위로 불던 바람,
그리고 내 옆에서 조용히 걷던 그의 발걸음.
길들여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
어쩌면 내가 몰래 꿈꾸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파리 거리에서 잠깐 현실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겨우 반나절이었지만
그와 함께 있던 시간은
이상하게도 하루치 이상의 밀도로 남았다.
만약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까?
그 질문은 끝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해 여름 파리에 그대로 남겨졌다.
나는 비엔나가 아니라 파리에서,
나만의 비포 선라이즈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무섭게 흘렀다.
나는 다시 논문과 책, 연구실과 강의실 속으로 돌아갔다.
하루를 24조각으로 쪼개 쓰는 삶.
파리의 낭만도,
그도,
자연스럽게 먼 서랍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온통 들썩이게 하던 서비스가 등장했다.
2001년, 싸이월드.
도토리로 음악을 사고,
스킨을 사고,
일촌을 맺는다는 버튼 하나로
관계가 생기던 시절.
그날도 나는
별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내 미니룸 배경음악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잊고 있던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나의 파리,
나의 보헤미안,
그리고 그가 쪽지에 적어주던 글자.
Carpe Diem.
혹시… 싸이월드라면,
정말…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 찾기 검색창에 그 단어를 넣었다.
그냥 호기심 반, 추억 반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의 미니홈피가 있었다.
첫 화면에는
파리 골목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선라이즈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일촌 신청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그에게서 일촌 승낙이 왔다.
그 무렵 우리는
서로의 미니룸을 오가며
조금 어색하고, 조금 낭만적인 댓글을 남겼다.
“오늘은 여름 같네요. 센강 생각나요.”
“이 노래, 혹시 그때 파리에서 듣던 곡 맞죠?”
“요즘은 어디서 글 써요?”
“한국 들어오면 연락 주세요. 커피라도.”
그는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파리와 서울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딘가에 정착하지도, 완전히 속하지도 않는,
늘 가벼운 배낭 하나로 이동하던
그 시절의 진짜 보헤미안 같은 사람.
반면 나는
늘 어디엔가 소속돼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문화계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원고 마감에 쫓겨 취재 현장을 뛰어다니며,
“시간이 없다”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
그는 골목을 걸으며
하루의 느린 결을 사진과 글로 남겼고,
나는 숨 가쁜 하루의 빠른 숨을
칼럼과 원고로 쏟아냈다.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살던 두 사람이
싸이월드라는 작은 미니홈피에서
서로의 속도와 온도를
조용히 엿보던 시간.
재미있게도,
우리 둘 다 아이디에 같은 단어를 쓰고 있었다.
CarpeDiem07,
Carpe_Diem03.
뒷번호만 다른,
서로의 또 다른 분신 같았던 두 개의 이름.
온라인상에서만 만나는 일촌이었지만,
어쩐지
“나 말고 또 다른 나”를
멀리서 몰래 응원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이 개봉했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제시와 셀린.
서로는 다른 사람과 결혼도 하고,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어딘가 여전히
서로의 문장 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
극장 불이 켜졌을 때
우리는 한 박자 늦게 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도,
다시 이어지는 인연이 있을까?
우리는… 어떨까?
그즈음, 싸이월드는
정점을 지나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네이버가 포털의 왕이 되고,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카카오톡이 삶의 속도를 완전히 바꾸면서
컴퓨터를 켜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옛날 것’이 되어갔다.
미니룸의 배경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로딩조차 되지 않았고,
일촌 목록은
천천히 회색빛 유령처럼 희미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싸이월드가 문을 닫는다는 공지가 떴다.
우리의 미니룸도,
배경음악도,
일기장도,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라는 나의 닉네임도, 한 번에 암전 된 무대처럼 사라졌다.
그때는 정말
방이 사라지면 사람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우리 모두는
너무 바쁘게 살고 있었다.
취업, 이직, 공부, 연애.
어딘가에서 항상 쫓기듯 살아가던 시기.
연락도 자연스레 끊어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서로의 속도에서 멀어졌다.
나는 가끔,
새벽 조용한 시간에
문득 우리 둘의 아이디를 떠올리곤 했다.
Carpe Diem.
그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출을 보고 있을까.
우리의 싸이월드 시절은
그렇게 조용히,
하나의 계절처럼 저물어갔다.
또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아주 사소한 계기로
나는 네이버 검색창을 열었다.
여행, 파리, 작가.
그렇게 몇 글자를 쳐보았을 뿐인데,
화면 위에
어딘가 익숙한 사진 구도와,
읽으면 읽을수록 낯이 익은 문장 습관,
그리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미소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찾았다…
나는 오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여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예비 여행작가”라고 말하던 청년이 아니라,
이제는 진짜 이름을 걸고
사람들과 국내외 여행지를 함께 다니며
책을 내고, 강의를 하고,
자신의 회사를 차려
여행을 일과 삶으로 엮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쓴 글들을 몇 편 천천히 읽었다.
문장 사이사이,
그때 파리 다리 위에서 들었던 말투와
숨 고르던 호흡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서로의 안부를 한두 줄씩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한 문장이 나왔다.
“언젠가 커피, 한 잔 할까요?”
서울 광화문 인근의 조용한 카페.
겨울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오던 오후.
테이블 위에는 커피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혹시… 파리에서 길 잃었던 그 사람, 맞죠?”
그가 먼저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Carpe Diem’ 치면 나올 거라고
암호 하나 던지고 사라졌던 사람도, 저고요.”
둘 다 웃었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만남은
야단스럽지도,
드라마 같은 로맨스도 아니었다.
살면서 한 번쯤
필요할지도 모를 작은 에필로그.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사이,
그 사이 비어 있던 페이지 한 장을
조용한 대화로 채우는 시간에 가까웠다.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방식은
늘 대단한 사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소박한 온도 속에서
조용히 스며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이것만으로도
내 20대의 비포 선라이즈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조카가 소파에 반쯤 몸을 걸친 채 물었다.
“이모, 카르페디엠이… 지금 막 신나게 즐겨라, 그런 말인 거지?”
조카는 마치 방금 막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본 사람처럼.
눈동자가 반짝이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관객의 표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음… 그 말은 그보다 조금 더 깊이가 있어.
‘지금의 나’를 잠깐 바라보라는 뜻이야.”
조카가 내 얼굴을 보는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
“잠깐… 바라본다고?”
“응.
계속 내일로 넘겨두던 일들,
언젠가 말해야지 하고 눌러두던 마음들,
한 번쯤은 시작해야 하는데 자꾸 미뤄두던 시작들…
그걸 오늘, 아주 조금이라도 만져보라는 말.”
조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해보다 감정이 먼저 닿은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막 놀라는 말은 아니구나?”
“그렇지.
오히려 지금의 나를 놓치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까워.”
그 말을 내뱉고 나니
문득, 내 안의 시간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 위에 올라섰던 10대의 나.
파리 골목에서 길을 잃던 20대 중반의 나.
싸이월드 친구 찾기 검색창에
‘Carpe Diem’을 두드리던 20대 후반의 나.
그리고 지금 이 조용한 저녁,
소파에 나란히 기대어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나.
겉모습은 다 달랐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미루고 싶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지금 이 순간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럼… 지금 이모의 카르페디엠은 뭐야?”
조카가 다시 묻는다.
아까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나는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았다.
붉게 젖어가는 유리창,
사라지지 않고 잠시 머무는 빛.
“아마… 지금 이 대화.
그리고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건네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아닐까?”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나는 조용히 덧붙여 생각했다.
그리고
이 문장을 함께 읽고 있는
지금의 우리 모두의 시간도.
당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어느 교실,
엄격한 공기를 살짝 가르며
몰래 책상 위에 올라섰던 일.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잠깐 멈춰 서 있던 그때,
누군가 다가와 “괜찮아요?” 하고 말을 걸어주던 밤.
싸이월드 미니룸의 오래된 BGM 아래에서
한 이름 앞에 커서를 오래 머물게 하던 시간.
혹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인연의 이름을
다시 검색창에 천천히 적어보던 새벽.
그 순간들 사이 어디쯤에서
잠깐이라도
“아, 나는 지금 살아 있구나.”
하고 느껴졌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카르페디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이 순간,
90년대 학번이든, 2000년대생이든,
각자의 소파와 각자의 하루 끝에서
당신의 카르페디엠은 어디에 있나요?
혹시 모릅니다.
오늘 이 질문 하나가,
우리 모두의 다음 장면을
살짝 앞으로 당겨오고 있는지도.
• <죽은 시인의 사회>
라틴어 문장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고, 내일은 너무 믿지 말라.”
키팅 선생님이 교과서 서문을 찢게 한 건
‘점수로 시를 평가하는 시대’에
잠깐이라도 벗어나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게 한 장면은
“같은 교실도 시선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작은 혁명이었다.
90년대 학번에게 이 영화가 특별했던 이유는
우리가 그 시절,
말하고 싶은 말을 입 안에서만 굴리던 세대였기 때문이다.
• <비포 선라이즈>
기차에서 우연히 내린 두 사람.
비엔나의 밤공기,
운하의 물결,
새벽의 골목.
사소한 이야기가
어쩐지 서로의 세계를 흔들어 놓던 밤.
90년대 대학생들에게
“낯선 도시에서 하룻밤 동안 마음이 연결되는 경험”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 <비포 선셋>
9년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삶과 상처가 달라졌지만
대화만큼은 세월에 닳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극장을 나와 바로
싸이월드나 네이트온, 아이러브스쿨
친구 찾기에서
오래전 이름 하나를 검색했다.
혹시라도 다시 이어질까 봐.
• 에단 호크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말끝을 흐리던 소년.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밤새 철학하던 청년.
<비포 선셋>에서는
삶의 무게를 아는 어른.
그리고 현실에서 그는
1996년, 첫 소설을 낸 작가가 되었다.
그의 성장기는
우리 세대의 성장기와
묘하게 같은 속도로 흘렀다.
• 싸이월드
도토리로 음악을 사고,
일촌으로 관계를 사고,
사진과 일기가 방 안에 켜지던 시대.
그러나 모바일의 시대가 오자
그 방들의 불이 하나둘 꺼졌다.
배경음악도, 스킨도,
미니룸에서 살던 우리의 감정도
조용히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어쩐지 모든 것이 지나간 것 같은 순간들.
Carpe Diem(카르페디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요즘의 카르페디엠은
반항도, 모험도, 충동도 아니다.
조용히 말한다.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잠시 바라보라.”
미루던 마음을 조금 꺼내 보고,
내일로 넘기던 시작을 조금 당겨 보고,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조금 덜 나를 다그치는 일.
오늘의 내가 만든 작은 선택 하나가
내일의 나를 아주 조용히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아는 것.
그래서 카르페디엠은
거창한 외침보다
오늘의 나를 향한 조용한 인사에 가깝다.
“지금의 너를, 놓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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