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영화의 최고 작품!
영화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역사는 변한 게 없는데 그 역사를 말하는 영화의 방식은 이토록 다양하다. 지난 주 수요일 개봉일에 큰아들과 함께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왔다. 이동진을 비롯해 많은 평론가들이 10점 만점을 준 영화다. 이런 영화는 앞으로 영화 분야에서 일하게 될 우리 큰아들에게는 좋은 지침이 될 것이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나에게는 창작에 대한 뾰족한 자극이 되어준다. 지난 주에 넷플릭스로 봤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마찬가지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다. 기회가 되면 책도 읽어보고 싶다. 훗날 나도 이런 영화의 원작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행복한 몽상에 젖어본다.
영화의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의 뜻을 찾아봤다. 영어로는 '관심 지역'으로 번역되지만 역사적으로 상징하는 바는 이렇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 지역을 점령한 나치 독일은 엄청난 규모의 강제수용소를 지으며 주변 토지를 몰수했는데, 이때 몰수된 땅에서 얻은 경제적 이득을 'The Zone of interest'라고 불렀단다(출처 : 블로그 야론무비). 그렇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은 자들,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전쟁 영화 중에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를 가장 좋은 작품으로 기억한다. 전쟁씬 없이도 전쟁의 참상이 보이고, 전쟁에 참가한 이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을 만큼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전쟁 영화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앞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에 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할 것 같다. 나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유대인 학살을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소름끼치고 끔찍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보여준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담장 안에서는 가해자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담장 밖 홀로코스트를 짐작하게 하는 건 간간히 들리는 비명 소리와 검은 연기뿐이다. 한 쪽에서는 평화가, 다른 한 쪽에서는 대규모 학살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세계가 끔찍하다. 타인의 고통을 담보로 한 행복이 어떻게 저렇게 평범하게 그려질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이토록 무서운 존재였던가. 씁쓸함을 넘어 공포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는 가족과 함께할 때에는 자상하고 든든한 가장이지만 전쟁 중에는 명령에 복종하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군인이다. 다른 사람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으며 자기 역할을 잘 해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 것이다. 그 평범한 악이 너무 많은 평범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추락의 해부>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 산드라 휠러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도 돋보인다. 남편이 가져다준 부와 가정의 평화만이 그녀에게 중요하다.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한 어떤한 회의도 반성도 죄책감도 없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그리고 가정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 엄마, 아빠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영화의 리뷰는 영화를 보고난 직후에 써야 맛이 난다. 한참이 지난 후에 쓰면 그때의 감상을 생생하게 전할 수가 없다. 시작과 끝의 영상 처리와 소리 등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영화로서 뛰어난 요소는 무척 많았는데 지금 와 쓰려니 살짝 흐릿해졌다. 내 영화 리뷰도 좀 힘을 잃은 듯하다. 아무튼... 이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한 남편과 한 번 더 보러 갈까 생각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 꼭 시간내서 감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