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효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에서 멀어져 있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도 않는 나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 고른 책이다. 하루키처럼 꾸준히 쓰고 달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내 일상을 애정하고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말은 지금 내가 별로인 상태라는 얘기다. 하루하루 맘에 들지 않는 나를 부둥켜안고 내일은 괜찮을 거야, 이 정도면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야, 맘만 먹으면 다시 좋아질 수 있어, 이런 말들로 나를 위로하느라 바쁘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지가 꽤 됐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몸은 더 망가지고, 마음의 근육마저 다 빠져버려 휘청일 것 같아 불안해졌다. 책 처방이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읽었다.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p.35~36
하루키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그것을 매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나도 매일 달리기를 하게 되면 술을 끊고 매일 글을 쓰게 되려나.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만 된다면 이 책의 효과, 달리기의 효능은 기대 이상이다. 아무튼 더 읽어보기로 한다. 내일부터 달리기를 해야지 결심이 설 때까지... 어쩌면 책을 읽다가 스포츠 매장에 가 러닝복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담배를 끊는 것이 이전 생활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내가 만약 절주가 가능한 사람이 된다면 나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요즘 술 마시는 횟수, 양이 부쩍 늘었다.
하루키와 내가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 비슷하다. 하루키는 전업 소설가로 살기 시작하면서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잠드는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단다. 새벽 시간을 즐기는, 내가 좋아하는 루틴이다. 일을 할 때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10명 중 ‘한 사람’을 절대적인 팬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나도 논술수업을 하면서 수강생을 늘리는 것에 힘을 쏟기보다는 내 수업을 좋아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에게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술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지면서 새벽 기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3일 수업은 어떻게든 준비한다. 글쓰기를 하지 않는 대신 직업에 대한 책임만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p.122
이 부분을 읽고 한 달 넘게 쓰지 않았던 PDS 다이어리를 다시 꺼냈다. 트레이닝의 용도로 써야겠다는 다소 즉흥적인 계획이다. 다양한 원고지 노트도 책장에서 꺼냈다. 빛바랜 것도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글 쓰는 훈련을 해볼 생각이다. 쿠팡에 주문했던 값싼 러닝복 세트는 취소했다. 이따가 쇼핑몰에 나가 나이키나 아디다스, 뉴발란스 매장에 들러 내 몸에 맞고 맘에 쏙 드는 러닝복을 한두 벌 살 예정이다. 매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려면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잘못된 소비 패턴까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써야 했다. 먹고 마시는 일회적인 소비는 지양하고, 소박하다는 위안과 함께 싼 옷을 사 입을 게 아니라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순수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옷장과 신발장을 가장 나다운 것으로 채워가고 싶다. 서서히, 신중하게.
하루키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100km 완주한 이야기를 하면서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 아직 있었구나’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아직 10km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내가 하루키의 그 기분을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내가 아직 의지력이 충만하고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나를 조절하는 능력이 아직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작용했다. ‘해냈다!’라는 성취감, 그렇다면 다음 목표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열정과 활력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나이 운운하며 속도를 늦추고 싶진 않다. 나는 아직 인생에서 제대로 달려보지 않은 것 같아 미련이 남는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파악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 –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p.258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다음 날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트랙이 잘 되어있는 근처 공원에서 주로 아침 6시 전후로 러닝을 시작한다. 첫날은 3km 달리고 5km 걷기, 둘째 날은 5km 달리고 3km 걷기로 워밍업을 했다. 기분이 업되어 그날 2025 인천마라톤 대회 10km를 1시간 15분 안에 달리는 그룹에 신청했다. 나에겐 생애 첫 마라톤대회다. 러닝을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10km 쉬지 않고 달리기에 성공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은 10km 완주를 하고 컨디션이 좀 안 좋은 날엔 달리기와 걷기를 병행한다. 힘들지만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에너지 100% 충전 상태이다.
새벽 기상을 하고 달리러 나가기 위해 술 마시는 횟수를 줄이고 식단도 신경쓰기 시작했다. 오늘 기준으로 마라톤대회까지 82일 남았다. 그 기간동안 10km 달리기를 연습하며 건강하게 살도 빼고, 아침 러닝과 함께 그동안 게을리했던 글쓰기도 나의 하루 루틴으로 굳혀야겠다고 결심한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매일매일 혼신을 힘을 다하며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은 분명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다면 내가 원하는 어느 곳에 도달할 수 없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에 자신을 작가이자 러너라고 적겠다고 한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그의 묘비명이 멋지다. 남은 내 인생, 달리는 속도를 좀 줄이는 때는 있더라도 느슨하게 걷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