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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May 07. 2021

세상의 '린드'들에게

쉽게 규정짓는, 막말하는.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린드 아줌마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막 표출하는 사람이다. 개중엔 사이다 발언도 있지만, 보통 '막말'에 가까운 발언들이 많다. 린드 아줌마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게 (본인 멘탈에) 건강하다고 믿는 부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문제는 보통 본인만 건강하고 남에겐 상처를 자주 준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린드'들은 '절대'라거나 '그런 놈들은~'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쉽게 프레임 씌우고 쉽게 정의 내려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두부 썰리는 듯한 경우만 있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짐작과 다른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원인과 결과는 대부분 퍼즐처럼 맞춰지지 않는다. 또 당연하게도 각 상황에는 각 상황을 구성하는 맥락이 있다. 심지어 모두가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불륜, 범죄 등에도 맥락이 있다. 단순 소매치기라면 경범죄라도 유치장에 가야겠지만, 가족을 해친 살인마에게 뺨 한대 친 폭력사건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맥락을 보고 상식에 맞게 판단하는 것이다. 아니, 사실 당신의 그 똑 부러지는 판단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간절함과 노력이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 것이란 기대는 인류의 오랜 신화였다. 신화는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서는 신앙으로 승격했다. <시크릿>이나 <아웃라이어> 같은 책이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이 팔린 이유다. 노오력 신화가 종교처럼 이어져 오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꿈이 누군가의 밥벌이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 공부를 다시 교육으로, 교육을 다시 시장으로 바꾸면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회는 종종 자신이 져야 할 짐을 개인의 어깨에 옮겨 놓고, 불가능을 감상한다. 이 불행은 꼰대들, 승자들, 혹은 운 좋게 차별을 겪지 않은 자들에 의해 재생산된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게 운도 좋고 철부지도 없는 이 세상의  '린드'들이다.

한편으론 '그냥 보면 영 아닌 일'에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 예술이다. 가령 <마담 보바리>를 보면 보바리 부인이 창 밖을 보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두 쪽을 넘어간다. 그 묘사를 하나씩 따라가야만 보바리 부인의 헛헛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보바리 부인은 그냥 드라마 시리즈 '사랑과 전쟁'의 주인공일 뿐이다. 단순하게 정의 짓기 좋아하는 이 세상의 린드들은 예술을 좀 더 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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