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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ug 06. 2021

6. 여행의 목적: 연어, 겨울왕국, 오로라, 피오르드

 노르웨이에 가서 무엇을 할까. 노르웨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이 결국 여행 일정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3대 트레킹 명소 정복 

노르웨이 트레킹 명소 정복(이라고 쓰고 험난한 등산이라고 읽는다). 3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업계 피셜인데, 노르웨이 3대 트레킹 명소도 마찬가지였다. 노르웨이인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시험 족보처럼 전해지는 트레킹 3대 명소가 있다. 프레이케스톨렌, 트롤퉁가, 쉐락볼튼. 이름을 읽으면서도 직감했다. 된소리 발음만큼 쉽지 않은 곳들이라는 느낌이. 읽을 때 혀가 꼬이는 것 이상으로 심하게 발이 꼬일 것 같다. 구글과 노르웨이 관광청이 ‘노르웨이에서 추천하는 10가지 할 거리’에도 트레킹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처음엔 나도 한국인답게 족보를 이어받아 트레킹 명소 위주로 루트를 짜려고 했다. 하긴, 산과 나무를 가까이서 보고 식생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산을 오르는 등산일 테니. 

 문제는 일주일 안에 3대 명소를 다 돌자면 신랑은 매일 트레킹을 하고 다음날 4~5시간 운전하고 또 트레킹을 하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터였다. 비도 자주 오는 나라에서, 우비를 입고 비가 안 오길 기도하며(혹은 비가 와서 못 가게 되길 기도하며?!) 매일 날씨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돌산을 내려와서 고구마 박힌 종아리를 주무르며 낯선 나라에서 눈물로 노르딕 구스 베갯잇을 적시며 잠들고 싶지 않았다. 애써 멋진 장관을 본 것으로 위로하며,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구스 털 날리게 이불을 차며 십중팔구 루트를 짠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싶을 게 뻔했다.     


오로라 

오로라를 영어로 하면 오우로라 (Aurora)가 아니라 노던 라이츠 (Nothern Lights)다. 북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빛이라는 뜻 이리라. 안 그래도 보기 어렵다는 오로라는 다행히 우리 부부의 관심사항 교집합에 들어있지 않았다. 물론 언젠가 한 번쯤 보면 좋겠지만, 굳이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가서 새벽에 일어나 덜덜 추위에 떨며 오로라를 기다리고 실망하고 괜찮은 척하며 여기까지 온 김에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나 갈팡질팡 하면 부부싸움이 일어날 확률은 10000%였다. 오로라를 보고 싶으면 차라리 서로의 눈에서 나오는 초록색 레이저 빔을 보는 게 빠를지도 몰랐다. 연어 잡이나 자연산 연어회 무한리필 뷔페라면 모를까, 나는 오로라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신랑이 오로라는 캐나다에서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보겠지. 아니면 말고.     


피오르드 

아니, 피오르드 피오르드 해서 나는 그게 고유명사처럼 한 군데 줄 알았는데 노르웨이에도 피오르드는 하나가 아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송네 피오르드가 있고, 여름에만 개방된다는 한정판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등등. 이러면 또 루트가 고민됐다. 널리 알려진 송네 피오르드는 너무 관광지화 된 것일지 모르니, 이왕 간 김에 남들이 가보지 못한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보고 올까, 아니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긴 피오르드라니 송네를 가긴 해야 되지 않을까. 관광객이 아니라 로컬처럼 여행을 하고 싶은 나와 그래 봤자 처음 가는 관광객 주제에 라고 생각하는 내적 자아가 갈등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내가 궁금한 건 북유럽 사람들의 일상 쪽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먹고(매일 연어를 먹는가? 킬로당 얼마에 마트에서 살 수 있는가? 냉동연어는 먹지 않는가? 자연산 연어를 레몬즙에 곁들여 먹는가? 초장이라는 문화를 배워 볼 생각이 있는가? 노르웨이에서 많이 먹는다는 브라운 치즈는 무슨 맛인가?), 긴긴 겨울을 어떻게 버티고, 바이킹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으며, 대자연 속에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궁금했다. 내 이상형으로 오랫동안 상위 랭크를 유지한 토르, 바로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 같은 장신의 핸썸 가이들이 북유럽에는 즐비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서유럽과 그들의 의식주는 얼마나 다른가? 한 캔에 5~6천 원 하는 맥주를 파는 나라에서, 한 끼에 3~4만 원의 외식비를 거뜬히 호가하는 문화라면 어디서 친구를 만날까? 노르웨이 힙스터들은 요즘 어디로 가는가? (어디 나도 한번 구경이나 해봅시다) 북구의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은 무엇일까? (고어텍스와 패딩인가?) 금요일 저녁이 되면 직장인들은 어디에서 회포를 풀까? 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는 북유럽의 친환경정책과 제도는 삶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을까? 요즘 노르웨이인들은 맥주를 좋아하나, 아니면 어떤 와인이 유행일까? 미스터리 컵라면은 아직도 인기일까? 쓰고 보니 주로 ‘식’ 문화가 나는 궁금했다.     


 살인적인 물가를 견딜 수 있는 노르웨이의 매력이 궁금했고, 선진국 복지의 대명사가 된 노르웨이식 복지 정책과 문화가 알고 싶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들의 종류와 나뭇잎을 만지고, 노르딕 나무와 목재 가구의 냄새를 맡으며 나무 결을 들여다보고, 호수와 피오르드에 손을 담가보고 맑은 날 하늘에 비춘 물빛을 내 두 눈 에도 담아보고 싶었고, 대자연 속 청청 공기의 밀도와 냄새를 새벽녘에 맡아보고 싶었고, 피오르드의 웅장함을 마주하고 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번 여행은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괜찮겠다는 대책 없는 마음으로 숙소도 이틀 치만 예약한 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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