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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ug 24. 2021

7. 노르웨이는 가장 마지막에 오는 여행지

 그러니까 대망의 2019년 8월 10일 토요일 밤 10시 반, 인천에서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부랴부랴 몸을 실었다. 여행 출발 직전까지 내내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느라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밤 비행기라 여행 준비를 할 시간이 많은 데도 계속 잠에 빠져 짐도 안 싸고 자다가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간당간당한 시간에 겨우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터키까지는 12시간. 밤 비행기라 숙면을 취하긴 했지만, 경유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나니 비몽사몽 한 상태로 시차를 온몸으로 맞으며 3시간 반의 대기시간을 또 견뎌야 했다. 누울 수 있는 벤치를 찾아 노숙자처럼 공항을 헤맸다. 생각해보니 한 동안 직항이 가능한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지난 1월 바르셀로나 출장 때도 그랬고, 두 달 전 이태리 여행 때도 로마까지 가서 자동차로 여행을 다녔다. 신혼여행지로 피지를 고른 것도 직항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좀비 상태로 공항에서 노숙을 하다 이스탄불에서 다시 비행기를 4시간을 타고 인천에서 출발한 지 20시간 만에 겨우 오슬로에 도착했다.      

 나무로 지어진 북유럽의 공항. 오슬로는 공항에만 와도 북유럽 감성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어서 신랑이 있는 릴레함메르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슬로 공항에서 릴레함메르까지는 기차를 또 타고 2시간. 서울 집에서 릴레함메르 호텔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긴 여정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반지 원정대를 꾸리고 오크들한테 쫓기다 열 번쯤 죽을 뻔하고 대전쟁까지 치른 뒤에 겨우 집에 돌아가는 3부작 시리즈 여정에 견줄 만큼 길었다. 프리퀄 호빗 시리즈 3편을 보고,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다 봐도 24시간이 안 걸릴 텐데. 진짜 가도 가도 가는 중이라, 맨발로 산 넘고 물 건너 모르도르 산에 가는 프로도가 자꾸 생각났다.      

 누군가 노르웨이는 젊을 때 오는 곳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와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대자연의 웅장함을 너무 젊었을 때 접하면 다른 여행에 감흥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였을 테지만 노르웨이에 도착한 제 생각은 조금 많이 다릅니다. 노르웨이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노르웨이 여행을 돌반지처럼 살림 밑천으로 장롱 속에 고이 아껴두셔도 좋습니다만, 극동지역에 사는 분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는 아마, 이토록 장기간 이동해야 하는 여행은 다시는 하기 어렵겠다는 깨우침을 받았거든요. (정말로 코로나19가 터져서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이 되고 말았지만)     

 릴레함메르로 가는 기차에서 엄마랑 카톡을 하는데, 엄마가 출발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신랑을 못 만났냐고 했다. 그랬다. 인천에서 노르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먼 곳이었다. 20대의 나는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장거리를 견디려면 20대에 왔어야 했다. 30대의 나이 듦을 통탄하며 신랑을 만나자마자 와락 껴안았다. 뜨거운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샤워를 하고, 따끈한 컵라면에 속을 달래고, 보드카를 한 잔 하고 그대로 15시간 숙면에 빠졌다. 저녁도 먹지 않고 그대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마냥. 잠이라는 보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쭈욱 짜서 먹겠다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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