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보냈다. 이 동네 1층 상가의 임차료는 백오십만 원을 넘었고, 2층도 백만 원을 넘어섰다. 신도시 개발 후 공실로 내내 골머리를 썩었던 이 지역은 거주하는 인구보다 너무 많은 상가를 분양한 데다 외부 인구가 유입될만한 요인도 없다. 그럼에도 분양가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잘 되리라 덜컥 분양받은 임대인들은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월세 수준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했다. 임대인은 본전 생각을 해야 하고 임차인은 공실로 놔둘 바에 싸게 달라며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는 줄다리기 상황이 계속되었고 대체로 임차인이 우세했다. 상가를 구하려고 돌아다니기 직전의 상황은 그러했다.
이사 와서 출퇴근하며 한 번도 혜택을 누려본 적 없는 지하철이 신도시 삽질 후 거의 10여 년 만에
드디어 개통을 했고 이사온지는 6년 만의 일이었다. 지하철을 타려면 이삼십 분만에 한 대씩 오는 마을버스를 또 이삼십 분 더 타고 가야 했고 내려서는 긴긴 환승구간을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한 명만 올라탈 수 있는 좁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느라 몇십 미터 씩 줄을 섰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과 신경이 곤두선 사람들이 실타래처럼 뒤엉키곤 했다. 회식이 있는 날 퇴근길에는 종종 마을버스가 끊겨 꼼짝없이 집까지 걸어오기도 했는데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 지하철 개통이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지하철 개통과 더불어 상가 공실도 빠르게 소진되었고 임차료도 오르고 있었다.
한 달 순수입이 백만 원이 될 만큼 책을 팔 자신도 없거니와 지금부터는 임차료가 떨어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문득 배수진을 치자 싶었다. 월세보다는 대출이자를 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배수진이었는데 그 생각을 했을 땐 그저 나 자신이 기특했다.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미분양된 상가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여태껏 미분양이라는 건 그만큼 가망이 없는 상권 중에서도 가망이 없는 자리라는 말인데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공실이 줄어들고 월세는 오르고 있으니 이거라도 잡아야 겠다 싶었다. 부동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미쳤다, 무모하다 하겠지만 월세를 주느니 대출이자를 내는 편이 좀 더 안정적으로 책방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건 건설사가 미분양분을 할인해 주겠노라 한거다.
어쨌든 매수를 한다 생각하니 지난 일 년간 수없이 둘러보던 상가 자리를 보는 자세가 또 달라졌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생기면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왔지만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랐다. 다만 매매를 위해서는 그런 마음가짐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위한 꼼꼼함과 날카로움이 필요했는데 초보 상가 매수자인 나는 도대체 무얼 확인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저 책방을 하겠다는 의지 하나만 확고했다. 여기저기 부동산에 들어가 물어보기도 하고 자주 다니는 커피숍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요새 분위기가 어떤 지 슬쩍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확신이 서는 곳이 좀처럼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곳과 만나기 전까지는..
상가는 1층이 진리이거늘 1층은 2층 가격의 두배나 되기에 1층이라는 버거운 녀석을 감당할 여력도 없거니와 1층과 책방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찾아오는 매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태껏 읽은 책방 관련한 책에도 분명 그런 이야기들이 많았다. 또 책을 보러 오는 사람이라면 2층에 올라오는 수고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겠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도 깨닫긴 했지만 실제로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2층까지 올라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고 찾아오는 걸 꽤 즐기기도 했다. 다만 그런 독자분이 아주 아주 극소수라는 것. 건물주 친구가 비싸도 꼭 1층을 사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댄 이유가 다 있다. 하지만 나에겐 1층을 살 돈이 부족하니 뭐 달리 방법도 없기에 그렇게 점찍어둔 2층 자리를 며칠 내내 왔다 갔다 하다 제일 처음 상담을 해주신 젊은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님, 저기 2층 자리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