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필드는 또 다르지
골프를 시작하면서 우린 과거에 내가 어떤 운동을 수준급으로 잘했다고 자랑한다. 운동신경이 어쩌고, 예전에 했던 운동들을 무협지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한 달, 일 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시작할 때쯤 말했던 잘난 체는 조금씩 사라진다.
그때부턴
"골프는 운동신경으로 되는 게 아니다. "
"골프는 멘탈이다. "
골프는 ㆍㆍㆍㆍ변명의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자신이 해왔던 운동과 비교하며 달려들던 수많은 아마추어들은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결론을 이야기한다.
가끔 다른 운동처럼 골프도 쉽게 하는 이들도 있다. 극소수의 인원이고, 쉽게 하는 이들도 엄청난 연습, 수많은 필드 경험을 체득한 후 너보단 쉬웠다고 말한다.
현재 골프존 스크린 횟수가 나는 5백회즘 된다. 늦게 시작한 이들이 독수리를 달고 날아다니고 있어서 그들의 게임 수를 보았더니 많게는 2천 회가 넘는 이들도 있었다. 연습장에서 똑딱이를 하던 이들이 어느새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게임도 많이 해본 사람이 이기는 게 당연한 원리 아닌가 생각하며 그들을 인정해 줬다. 난 더 이상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스크린 골프는 게임이라 어느 정도 선까지(독수리?)는 올라가는 걸 보는데 필드는 그렇지 않다. 스크린 독수리 등급은 언더를 치는 스코어인데 필드만 가면 백돌이가 되어 돌아온다. 그걸 보면서 연습이 곧 실력이지만 연습이 필드와 스크린 실력을 동급으로 만들어주진 않는구나 깨달았다. 운동신경이 좋다고 말하던 이들이 스크린과 필드를 나누지 않고 스크린 독수리 등급에 올라서곤 말하는 것이다. 골프 쉽다고. 그럴까? 독수리들이 필드 여행을 다녀오면 참새가 되어 돌아온다.
스크린 등급은 참새 - 까치 - 학 - 매 - 독수리로 나뉜다.
백발장타 백발백중
나는 채를 갖다 댔을 뿐인데
대포알이 날아간다
순간 수없이 장전했던 과거가 스친다
육체는 잊지 못한다
정신은 살아서 그날을 회상한다
백발백중 조중사라 불리던 나!
깃발을 펄럭이지 마라
백발 장타 조프로가 되어 돌아왔다
명사수가 되지 않으련다
대포 소리를 듣고 싶거든
언제든 부킹, 항시 장전 중
직업 군인이었던 선배와 라운드에 나갔다. 그는 장타자고 독수리 등급이다. 그는 모종목에 지역 대표를 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다. 운동할 때마다 선배가 하는 말이 있다. "골프 어렵다. 다른 건 다 금방 되던데 이건 안되네." 선배는 매일 연습장에 살다시피 하는데도 어렵다고 말한다. 어쩌다 비슷한 연습량을 가진 친구한테 필드에서 무참히 깨지고 오는 날은 그가 나보다 필드 횟수가 더 많아서 진 거라고 변명을 하곤 다시 연습장으로 달려간다. 연습량에서 안되면 경험의 누적치를 따진다. 핑계는 구력이 쌓일수록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선배는 군대에서 사격할 때 집중력이 좋고 무던히 사격 자세를 연습해서 백발백중이었다고 늘 자랑했는데 골프 이야기만 나오면 작아진다. 축구 대표였던 이들, 족구 대표, 태권도, 웨이크보드 강사, 농구 대표, 배구, 수영선수, 역도 선수권자, 배드민턴 전국 A급, 탁구, 등 수많은 스포츠를 거치고 왔던 아마추어들은 하나같이 골프 앞에선 작아지는 걸 목격했다. "난 이 종목에서 우승자인데 뭐가 어려워" 덤볐다가 큰코다친다. 골프는 스윙하나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무참히 깨져야 조금 알게 된다.
운동 신경이 좋아서 금방 싱글을 찍고 유지할 수 있다고 했던 사람들도 골프채를 놓는 순간 다시 백돌이가 된다. 연습, 멘탈, 감각, 매니지먼트 등 골프는 하나가 된다고 다 되는 게 아님을 구력자일수록 실감한다. 쉽지 않은 운동을 정복하려 들수록 멀어져 가는 걸 느낄 것이다. 정복이란 단어를 지워버려야 한다. 이 운동과 평생 함께 가겠단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줘 긴장을 풀어주고 힘이 빠질 수 있다. 힘이 빠져야 잘 친다는 말이 뭘까 생각해 보자.
그래도 우린 언제든 부킹을 기다린다. 항상 출동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오늘도 백돌이가 되더라도.
골프는 과거에 갇히면 더더욱 안 되는 운동 같다. 예전에 내가 이랬는데, 잘 칠 때가 있었는데 등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는 순간 발전은 사라진다. 다른 종목에서 수준급이어도 골프에선 아니잖아. 그러니깐 운동신경에 연연하지 말아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