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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Nov 21. 2021

관계 2. 낭랑 55세 소녀의 핑크 뮬리

관계에 대하여

"딸, 여기 어때~?"

 URL과 함께 온 카톡 메시지.


엄마가 고향집 근교의 핑크 뮬리 공원 포스팅을 공유한 것이다.

체 언제 이렇게 콘텐츠를 공유하는 방법까지 배운 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 55세 세상의 시름을 다 겪었어도 활짝 핀 꽃과 분위기 좋은 카페, 풍경 좋은 에서 찍은 인증에 설레 하는 엄마를 보면 꼭 소녀 같다.


딸과 엄마의 사이는 묘하다.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웠던 사춘기 시절, 엄마는 내 짜증과 못된 말들을 눈물을 흘리며 참아다. 그때의 엄마와 나는 서로를 경계하기 바빴다.


예민했던 시기가 지나고, 중 2병 특유의 세상과 집, 부모 대한 불만을 거둬내니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엄마가 보였다.

이쯤 진짜 대화라는 게 시작됐다.

엄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자애롭고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공부, 연애,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가장 믿을만한 친구가 됐다.

하지만 가까워진 만큼 말 한마디로 서운해 삐지고, 자주 말다툼도 했다.

며칠씩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서른을 넘긴 지금, 엄마와 나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됐고, 무엇보다 나를 낳았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지나오며 엄마를 이해하고 더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10년 단위로 서서히 바뀌었다.

10대인 내게 엄마는 해하기 어려운 부모였고, 20대 엄마는 가까운 친구였다.

그리고 30대엄마는 보살펴주고 싶은 여린 소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익히는 엄마가 꼭 글자를 떼는 아이 같아 기특하고 마음 한편이 벅차오른다.

예쁜 걸 보면 감동해 조잘거리며  이야기하는 엄마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비록 시기를 놓쳐 색이 바래버린 핑크 뮬리 공원이었지만 엄마랑 손을 잡고 걷는 동안은 지난 30년처럼 계속 이렇게 엄마 손잡고 같이 좋은 것들 보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년에는 다시 한번 붉게 물든 핑크 뮬리를 엄마에게 보여줘야지. 아이처럼 좋아할 엄마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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