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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정 Jul 09. 2024

지역에서 방송작가로 살아가기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22. 3  

“큰물에서 제대로 해봐야지” 작가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방송국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큰 방송국을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결혼 전, 부산의 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을 땐 ‘정말 가야 하나? 이대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 아닌가?’ 고민도 많이 했고, 퇴근 후엔 방송작가 구인·구직 사이트 게시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 작가 중에는 인서울에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원고료로는 휴대전화 요금과 적금 넣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원룸 월세와 생활비 등을 계산했더니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생활이 불 보듯 뻔했다. 더군다나 내게 서울은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거미줄 같은 지하철 노선도만 봐도 머리가 아프고, 출퇴근 지옥철을 떠올리면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바로 고개를 내젓게 된다. 부모님이 해주는 따뜻한 밥 먹으면서 동네 친구들과 퇴근 후엔 수다도 떨고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헤맬 것인가?’, ‘익숙한 골목에서 삶을 즐길 것인가?’. 양 갈림길에서 나는 지역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0년 전, 하동에서 이유식 공장을 차린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함께 일하시는 세 할머니와의 일상과 엮어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청년은 그사이 세 아이의 아빠가 됐고,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해 지역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만일, 서울행을 택했다면 지역의 인물, 역사, 문화 등 고유의 스토리를 발굴해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재미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제작했던 방송을 계기로 성장한 이들을 만나면 지역 방송작가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래 잘한 결정이었어!’      


 ‘올림대교 교통량이 많아 우회하시기 바랍니다’ 학창 시절, 등교를 위해 버스를 타면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라디오가 나왔다. 도대체 올림픽대교 차 막히는 걸 왜 부산에 사는 우리가 들어야 하지? 지금 당장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꼼짝도 못 하는데 부곡교차로 교통상황은 알 길이 없고, 양화대교 소식만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아예 이어폰을 끼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방송도 로컬지향의 시대로 가고 있다. KBS는 7시 뉴스를 확대 편성해 지역뉴스 비중을 높였고, 지역 방송작가인 나는 지역의 인물을 대담 코너에 초청해 지역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지역뉴스가 서울뉴스 뒤에 잠시 나왔다 사라지지 않으며 더는 지역에서 양화대교의 차량 정체 소식을 듣지 않아도 된다.    


 구성작가로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소멸의 땅’이 방영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지역에도 희망이 있다”였다. 맞는 말이다. 지역에도 작가가 있고 풀뿌리 언론사가 있고 희망이 있다.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지역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가지 않는 이유’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소멸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는 모여있고 밀집해 있는 것의 위험성을 직·간접적으로 깨달았다. 지금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흩어져야 하는 시대’다. 5월 새로운 정부 출범에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에 ‘지역균형발전특위’가 설치됐다. 정치적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지역작가, 지역청년, 지역언론, 지역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로컬 감수성을 가진 균형발전 대안이 마련되고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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